병원장으로 일 할 때 일이다. 모 교수가 병원장실로 찾아 왔다. 새로운 사업 제안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건강상담을 하고 필요하면 화상통화로 간단한 진료도 할 수 있다'는 사업이었다. '정부는 정보통신분야의 일자리를 만들고 병원은 환자를 확보 할 수 있으니 서로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 사업을 전면실시 하기 전에 시범사업을 하고 싶어 했고, 그 교수는 시범사업 연구과제에 응모하는데 병원의 도움이 필요했다. ‘U-헬스’ 사업이다.

사업구성은 이랬다. 대학병원과 지역이 연계해서 지역주민의 건강을 돌본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가 지역에서 오는 만큼 병원입장에도 필요한 일이었다. 구청은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 애쓴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고, 보건소 역시 대학병원과 사업을 연계함으로서 보건소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큰 예산이 들어 갈 일도 없었다.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구청과 보건소와 업무협약을 맺고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사업단 홈페이지에 건강정보가 제때에 올라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건강상담은 들어오는데 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교수님들에게 안내공문을 보내기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사업은 교수 개개인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교수들은 건강상담을 해야 할 의무가 없었고, 건강정보를 올려야 할 의무 또한 없었다. 교수들은 자신이 올린 건강정보가 다른 인터넷 매체로 떠돌아 다닐까봐 걱정했고, 진료 상담 또한 법적책임 때문에 기피했다. 소위 저작권과 인터넷진료의 의료과실에 대한 면책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건강에 관심이 많고 의료수요가 많은 연령층은 인터넷 사용이 서툴렀다. 반면 인터넷에 익숙한 연령층은 건강에 별 관심이 없었다. 건강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바빠서 그런 거겠지만 여하튼 결과는 그랬다.

서버나 홈페이지 관리도 문제였다. 모두들 서버나 홈페이지 관리를 기피했다. 관리를 위해서는 사람도 쓰고, 운영비도 들어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담스러워 했다.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던 구청과 보건소도 기존 업무에 치여서 그런지 곧 관심이 시들해졌다. 결국 병원만 남았다. 그렇다고 병원만의 힘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유-헬스사업은 이름만 남게 되었다.

원격진료 얘기를 듣다보면 지난 정부 때의 유-헬스사업이 생각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 할 때는 할 필요가 있고, 해야 할 이유도 있다. 그렇게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어 시작한 사업들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다. 새로운 사업은 여건이 조성되고 제도가 뒷받침 돼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원격진료는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으니 일단 해보자고 입법예고부터 했다.

지난 의약분업 때도 그랬다. 그동안 정부의 많은 사업들이 우리는 중요하다고 하고, 정부는 사소하다고 하는 바로 그것들 때문에 실패했다. 이번 정부는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중요시 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배우는 역사와 우리가 아는 역사는 같지 않은 모양이다.
/ 김형규 교수<고려대 의대 내과학교실·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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