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크게 한노총(한국노총)과 민노총(민주노총)으로 나뉜다. 보건의료노조는 민노총 소속이고, 민노총은 산별노조구조를 갖고 있다. 산별노조란 단위사업장노조(병원노조)가 노조교섭권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면 현대자동차 노조가 회사측과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회사와 교섭을 한다. 설사 상급노조를 대신해 현장 노조(회사노조)가 교섭을 한다 해도 반드시 상급단체(산별노조) 승인을 받아야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상급단체인 산별노조의 힘이 절대적이다.

산별노조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제도다. 단위사업장 노조의 힘만으로는 회사라는 큰 조직과 싸울 수 없으므로 같은 산업의 노조들을 묶으면 힘이 세질 것이라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산별노조의 힘은 파업현장에서 확인 되였다. 그 전까지는 협상장에 자기네 직원(노조원)이 회사간부와 협상을 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서 같은 밥 먹던 사람들끼리 싸우기가 쉽지 않았다. 파업이 끝나면 어차피 또 볼 사이고 직장 상사인 간부들과 평사원인 노조원 간의 협상이 대등할리 없었다. 어용노조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산별노조가 되고 나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선 협상장에 나오는 노조대표가 회사사람이 아니다. 상급단체인 산별노조가 협상권을 갖게 됨에 따라 노련한 협상전문가가 노조대표로 나선 것이다. 회사 사정을 모르는 산별 대표는 회사의 형편 보다는 산별노조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산별노조는 어느 한 사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제시하는 조건이 그 사업장에는 해당 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사측(회사)도 노측과 같이 협상권이 있는 단일단체가 만들어 진다는 가정 하에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의 경영실적이 다르고 국립병원과 사립병원의 경영환경이 달라서 병원들을 하나의 단체로 묶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한병원협회가 있기는 했지만 병협이 협상권을 가질 수 없는 이유였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한창 일 때 조차 임금인상률을 놓고 노조와의 싸움보다 병원간의 싸움이 더 치열(?)했다. 어느 병원은 받아 주자고 했고, 어느 병원은 적자로 문을 닫을 형편이라며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산별노조는 사측에게 통일 된 안을 만들라고 재촉했지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였다.

의료계뿐만이 아니라 사실 모든 회사에게 동일한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였다. 잘 되는 회사도 있고 어려운 회사도 있는데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입장만을 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별노조 제도가 시행되고 여러 해가 지났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해 보인다. 아직도 현장 사업장에는 산별노조대표는 있지만 산별로 업계대표가 있는 분야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노조가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김형규 (고대 내과 교수·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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