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 해외진출 현황=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 진출한 한국의료기관은 총 16개국 91개소(2012년 12월 기준)인 것으로 파악되며, 이는 성형외과·한방·피부과·치과 등 전문클리닉 형태의 진출이 약 60%로 대다수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진출지역 역시 중국이 31개로 34%, 미국이 23개로 25%를 차지하는 등 아직까지는 중국․미국의 교포시장을 중심으로 한 진출의 비중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현황으로만 볼 때, 진출 병원 수는 2009년 49개에서 2012년 91개로 4년간 약 두 배(185%)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2011년 79개 대비 1년간 28%가 늘어나는 지속적인 증가추이를 보이고 있다.

◇ 왜 해외인가?= 그렇다면 왜 이처럼 국내 의료기관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일까? 여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점차 급성장해가는 글로벌 헬스케어시장에 대한 기대감과 축척된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한 시장진입에 대한 자신감, 상대적으로 과다한 경쟁에 의해 치열해져가기만 하는 한 국내의료시장의 어려운 상황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요소 외에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의료가 성장함에 따라 보건의료가 낙후된 저개발국가들에 대한 나눔측면에서의 의료봉사와 같은 원조공여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도 존재한다.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고속성장과 의료선진국의 신흥시장 선점 노력= 2011년을 기준으로 세계 보건산업 시장규모는 10조 달러로 세계 GDP대비 14.3%를 차지하고 있으며(이중 의료서비스 시장은 5.7조 달러의 규모), 최근 빠른 속도로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세계 의료서비스 시장은 매년 8% 이상의 고도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동, CIS, 동남아(ASEAN) 지역은 빠른 경제성장에 따른 고급의료수요의 확대와 더불어 국가차원에서 의료현대화 사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글로벌 의료시장의 떠오르는 새로운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미국, 오스트리아, 싱가포르와 같은 의료선진국들은 민․관차원의 다양한 진출 전략을 마련하여 신흥시장의 대규모 공공병원 설립․운영 프로젝트를 선점하고 있으며, 향후 이를 보다 더 확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앞서나가고 있다. 미국은 UPMC,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16개 유수 주요 대학병원 중심의 민간주도 형태로 중동시장을, 오스트리아는 민간 영리기업인 VAMED를 중심으로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카자흐스탄시장을, 싱가포르는 역시 영리기업인 Parkway Holdings를 통해 동남아시아, 중국, 중동시장의 진출을 가속해 나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국내 의료환경= 많은 의료인들과 의료기관들은 해외진출의 동기 중 하나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의료시장의 포화상태를 꼽고 있다. 실례로, 척추전문 중형병원의 경우 2006년 150개에서 2010년 235개로 그 수가 57% 급증하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병원증가율(27.1%)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해외환자유입을 통한 새로운 수익창출의 가능성, 환자유치를 보다 확대하기 위한 현지 거점병원 마련의 필요성, 브랜드 확장, 현지에서의 파트너십 제안 등이 우리 의료기관들이 해외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주요 요인들이 되고 있다.

◇한국의료 해외진출의 역사= 한국의료 해외진출의 역사는 주된 역할을 맡은 주체를 중심으로 크게 3가지의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000년 이전까지를 “ODA(공적개발원조)를 중심으로 한 원조와 봉사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후 2010년까지를 “민간의 자생적 초기시장 개척의 시대”로, 마지막으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는 “정부주도의 민관협력 인프라 구축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1세대: ODA를 중심으로 한 원조와 봉사의 시기(2000년 이전)= 실질적으로 2000년대 이전에 해외에 진출한 의료기관의 대다수는 ODA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의사를 중심으로 한 의료봉사와 자선을 목적으로 하거나, 또는 개인 또는 기관차원의 종교적인 신념과 사명을 바탕으로 한 선교 목적의 진출이 대다수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A의료원의 몽골 ○○병원(1989), B대학교의료원의 방글라데시 ○○○ 종합진료소(1992), 네팔 ○○○○ 피부과(1998), 카자흐스탄 알마티-○○○의료원(1995)의 사례가 있다. 비록 보다 뒤인 2004년에 개원하긴 하였지만, 에티오피아의 C기독병원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ODA나 자선, 선교를 목적으로 한 의료의 해외진출은 엄밀히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수익창출을 위한 진출 또는 수출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쌓은 봉사와 나눔의 경험, 해외진료를 통한 한국의료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향후 외부적으로 한국의료를 바라보는 신뢰와 믿음의 바탕이 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해외진료 경험 축적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2세대: 민간을 중심으로 한 자생적 초기개척의 시기(2000~2009년)= 마침내 2000년대에 이르러서 한의원, 안과, 치과, 산부인과, 척추, 대장항문 등 전문진료과를 가진 중소규모의 의원․병원을 중심으로 한 민간차원에서의 자생적인 진출이 중국과 미국, 동남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시기에 진출한 의료기관들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2003년 미국에 진출한 H한의원, 2007년 중국에 진출한 O피부성형외과, 2008년 중국 상하이에 진출한 W병원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반면 아쉽게도 여러 어려움 속에 결국 철수하게 된 사례도 상당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2004년 중국에 진출한 I병원, 역시 2005년 중국에 진출한 Y메디컬, 2004년 베트남에 진출한 S안과병원의 사례가 있다.
이 시기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한 시기로, 성공과 실패의 음영이 극명하게 나뉨을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진출한 병원들 중 소수의 병원을 제외한 많은 병원들이 진출 몇 년 사이 철수의 아픔을 맛봐야 했고, 이러한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후 2000년대 중반부터 진출한 몇몇 병원들은 큰 성공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의 특성과 강점을 살린 진출전략과 모델을 통해 현지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보면, 해외진출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원인은 △운영 및 마케팅측면의 철저한 현지화 △현지시장분석을 위한 정보습득 △현지 운영인력 수급 △신뢰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 및 충분한 투자자금의 확보의 성공여부라 할 수 있다.


▲3세대: 정부주도의 민관협력 인프라 구축․시장조성 시기(2010~2015년)=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ODA를 통한 대형 병원건립 프로젝트(의료기기를 포함한 병원건설과 현지 의료인 초청교육 및 개원컨설팅 포함)는 때마침 이뤄진 UAE원전 수주와 맞물려 “병원 플랜트”의 개념으로 관심을 받게 되고, 이와 동시에 민간 진출 선발주자들의 몇몇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병원해외진출”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조되었다.
그러나 병원해외진출의 정책적인 지원결정은 무엇보다도 해외환자유치의 가시적인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 2009년 이명박정부는 글로벌 헬스케어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향후 국부 및 고용창출을 위한 신성장동력산업 17개 중에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을 포함하였고, 박근혜정부 역시 140개 국정과제 중 9번째 과제로 선정하여 그 흐름을 이어 나갔다.
이러한 정책기조를 바탕으로 2010년부터 정부는 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의료기관 해외진출을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첫째는 주요 진출전략국(UAE, 사우디, 카작, 우즈벡, 베트남, 몽골 등)과의 보건부간 협력 MOU 체결 및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정부간(G2G)협의체 운영을 통한 협력사업 발굴을 토대로 한 친한국적 진출 인프라 구축이며, 둘째는 의료기관들의 진출국 시장정보 부재를 해소하기 위한 종합 정보제공시스템 구축, 셋째는 의료기관들이 진출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현장맞춤형 지원사업(우수 신규프로젝트 발굴 및 육성)이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 속에 이뤄진 대표적인 성과를 몇 가지 살펴보면, 사우디 정부와의 협력사업인 쌍둥이(Twining) 프로젝트 및 의료인 연수 사업과 세종병원의 카자흐스탄 심혈관전문병원 진출, 보바스병원의 UAE 두바이재활센터(DRC)위탁운영 계약체결 등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한 가지 주요한 성과는 “해외진출 우수프로젝트 발굴․지원”사업을 통한 결과물들이다. 이 사업은 우수한 해외진출 프로젝트를 발굴하여 사업추진을 위한 초기경비를 지원함으로써 진출성공사례를 조기에 창출하고, 프로젝트 결과물을 매뉴얼화하여 DB로 구축․공유하여 해외진출을 준비하는 의료기관들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이다.
2011년부터 13년 사이 총 3차례의 지원사업이 진행되었는데, 총 40여개에 달하는 해외진출 프로젝트를 선정․지원하여 해외진출 성공을 위한 다양한 Biz-Model의 개발과 전파에 노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해외진출을 위한 금융지원방안 마련을 위해 병원해외진출 전문지원 펀드인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 조성을 준비하고 있으며, 2013년 3월 병원해외진출 전문지원기관인 ㈜코리아메디컬홀딩스(KMH) 설립을 지원하여 중동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G2G협력사업의 관리를 맡기는 등 여러 관련 주체들의 해외진출 전문성 및 역량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최근 민간차원의 움직임은 크게 의료기관과 연관산업들이 힘을 합한 협회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료수출협회(KOMEA)는 2013년부터 민간차원의 해외진출지원을 수행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의료 해외홍보․마케팅사업을 중심으로 활동을 펴고 있으며,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구성된 보건의료수출위원회를 중심으로 의료기관 해외수출 및 외국인 환자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한국의료 수출 성공을 위한 극복 과제와 향후 전망= 인프라 구축과 역량강화를 위한 현 “3세대(시장조성기의 시기)”가 성공적으로 지나가면, 201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인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진입기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는 역량 있는 민간주체들과 정부가 힘을 합하여 공공 대형프로젝트를 수주․운영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가 될 것이고, 이 시기를 거쳐 향후 2020년대가 되면 민간의 주도 하에 본격적으로 대형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운영하는 동시에 점차 한국이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시장정착기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한국에서도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VAMED나 Parkway Holdings를 넘어서는 민간기업이, UPMC나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뛰어넘는 민간병원의 등장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상호보완과 협력, 또한 대승․상생적인 차원(시장 또는 산업생태계 자체를 키우는)에서 국내 해당 이해관계자들의 상호 경험공유와 양보․협력 그리고 진출국의 보건의료성장에 기꺼이 돕고 기여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김 삼 량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제의료본부장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