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비행기를 타다보면 의사를 찾는 일이 있다. 난처한 일이다.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의사를 찾는 방송이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방송이 여러 번 나왔다. 환자가 급하거나 다른 의사가 없는 모양이다. 스튜어디스에게 의사라고 밝히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환자는 배식하는 곳 근처의 복도에 누워있었다. 국적은 잘 모르겠으나 40대 중반의 남자로 중동쪽 사람처럼 보였다. 화장실을 가다가 어지러워서 쓰러졌다고 했다. 우선 바이탈을 체크하기 위해 혈압계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비행기 실내가 너무 어두워서 혈압계의 바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 사람들이 쭉 둘러서 보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쓰이는데 혈압계 바늘이 안보이니….

의사를 대상으로 비행기에서 의사를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많은 의사들이 “자신이 의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해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환자가 내 전공분야 환자가 아니면 입장이 난처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다. 환자가 비행기에 탄 의사의 전공을 보고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다음은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문제였다. 선의로 한 일이라도 의료과실로 입증되면 의사가 법적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의료과실로 패소한 사례가 있다. 사실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의료행위는 불법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환자를 보는 것은 환자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환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 일 것이다. 내 전공분야 환자가 아닌 환자를 더군다나 시설과 장비가 부족한 곳에서 진료하는 것은 당연히 위험하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안과의사가 내과환자를 보다가 낸 사고와 내과의사가 내과 환자를 보다가 낸 의료사고 중 어떤 경우가 더 처벌 가능성이 높을까?

또 하나는 보상이 없다는 점이다. 어떻든 의사로서 일을 하였다면 항공사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나도 환자를 본 후에도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환자를 계속 모니터 해야 했다. 혹시라도 내가 내린 진단이나 처치가 잘 못 되지나 않았는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불려 나간 경험이 있던 병원 동료교수는 비행 내내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 스튜어디스가 내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묻기에 항공사가 나중에 감사의 편지라도 보내려나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감사보다는 오히려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비행기에서 의사를 찾는다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 하고 있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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