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이 문을 닫는 모양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있지만 책임 떠넘기기 수순으로 보인다.
전에 진주의료원을 가 본 일이 있다. 70년대 전공의 시절 무의촌 파견으로 진주 근처에서 6개월 생활했다.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주말이면 진주를 찾았다. 진주의료원에는 같이 파견나간 전공의들이 여럿 근무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30년쯤 지난 후 2000년대에도 간 일이 있다. 병원평가단의 일원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진주의료원이 아니었다. 병원은 새로운 건물로 단장했고, 시설이나 규모가 깨끗한 현대식 병원이 돼 있었다.
하기는 진주도 예전의 진주가 아니었다. 아늑하고 품위 있으며, 고즈넉하기조차 했던 도시가 붐비고 넓어지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가 돼 있었다.
70년대 진주의료원은 지금으로 치면 대학병원 급이었다. 서부경남을 책임지는 터미널병원으로 그 당시 도립병원으로 불리었던 진주의료원에서 치료 받는 것이 환자들의 소원이었다. 변변한 직장이 귀하던 시절 도립병원에서 근무한다면 외상도 마음껏 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2000년대의 진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진짜 대학병원이 생겼고, 다른 종합병원들도 많이 생겼다. 거기에 비해 인구는 별로 늘지 않았다. 가까운 창원이 커지면서 창원으로 인구가 이동했고 거제, 통영의 환자는 부산으로 빠진다고 했다.
옛날에는 도립병원이 지역 최고의 의료기관이였다. 그러다가 어느 샌가 슬그머니 의료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립병원이 더 이상 지역 최고의 의료기관을 나타내는 이름이 아니게 된 것이다. 대학병원 때문이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는 30여개의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이 새로 생겼다. 전국에 대학병원이 촘촘히 들어섰다. 그래서 어디에 살든 차로 1~2시간이면 대학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생긴 대학병원들은 대규모 투자로 병원을 대형화시켰다. 인구가 별로 늘지 않는 애매한 규모의 도시에서는 환자를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옛날 도립병원의 명성만으로는 경쟁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진주의료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의료원(도립병원)의 문제다. 겨우 적자를 면하는 의료원도 근처에 경쟁병원이 없거나 아파트와 같은 인구밀집지역이라 위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공공의료기관에게 흑자를 요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단일보험체제에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역할 차이가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따른다. 행려환자를 보고 의료지원을 나가는 것을 공공의료라고 한다면, 사스가 터졌을 때 민간의료기관에게 정부가 요구한 것은 공공의료를 요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는 반론도 있다.
일부에서는 저수가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하고, 일부에서는 강성노조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해 당사자인 의료계에서는 별 관심이 없다. 마지못해 내 놓은 성명조차 찬반이 엇갈린다. 하긴 문을 닫는 병원이 한둘이 아니고 또 새로 세워지는 병원이 한둘이 아니니까….

김 형 규 교수 <고려대의대 내과,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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