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실습을 나오는 학생들의 한결같은 질문이 있다. “무슨 과를 하는 것이 좋은가요?”다. 늘 받는 질문이지만 대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흔히 외과나 산부인과를 '기피과'라고 하는데, 모든 학생들이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외과 중에서도 유방-내분비외과나 혈관-이식외과는 오히려 선호한다. 산부인과도 산과전공을 기피하는 것이지 부인과전공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인기과의 판도는 세상이 변하는 만큼 빨리 바뀐다. 인기과가 바뀌는 이유가 무엇일까?
건강보험 때문이다.

20년 전까지는 외과, 산부인과의 전성시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과대학 중 외과나 산부인과로 개업하여 성공한 후 종합병원을 세우고 드디어는 의과대학을 설립한 곳이 여럿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가 의원급에서 입원실을 운영할 수 없도록 바뀌자 입원실이 필요한 과들이 어려워졌다. 입원실이 꼭 필요한 산부인과, 외과와 같은 외과계열의 수난이 시작 된 것이다.


이러한 수난은 외과계열을 거쳐 모든 과로 파급된다. 저수가가 고착되면서 건강보험만으로는 병원운영을 할 수 없게 되자 급여환자만 보던 내과계열들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상대적으로 비급여 항목이 많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가 뜨는 계기가 된 것이다. 소위 '피·안·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


'피·안·성의 시대'가 열리자 모든 과들이 여기에 뛰어 든다. 내과, 소아과조차 피부미용과 성형 간판을 걸 지경이 되었다. 전공과목과 관계없이 진료하는 의료의 영역파괴가 시작 된 것이다. 일차의료에서의 영역파괴는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만들었다. 일부 피부과 의원에서는 피부미용과 성형을 하느라 건강보험 피부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보낸다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피·안·성 에서의 경쟁이 심해져 포화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요양병원이다.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되고 요양병원이 급격히 늘면서 여기에 필요한 과들의 수요가 증가한다. 여러 과들이 해당되지만 그 중에서도 정신과, 재활의학과의 인기가 급상승중이다. 영상의학과의 인기는 요양병원과는 관계없이 MRI나 초음파가 건강보험이 아직 안 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내시경을 하는 친구에게 이러다가는 앞으로 위암, 대장암을 수술할 일이 줄어들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정기검진에 위내시경이 포함되면서 헬리코박터균치료가 늘고 또 조기 위암의 발견이 늘었다는 것이다. 또 대장내시경이 늘면서 폴립을 계속 떼어내니 대장암으로 진행될 틈이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가 있다. 전에는 교통사고나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뇌수술이 많았는데 요새는 사고가 나도 뇌손상이 올 정도의 큰 사고가 없고 다들 고혈압 조절을 잘해서 그런지 뇌출혈환자가 드물다고 한다. 신경외과가 뇌수술보다는 척추수술하는 과로 바뀐 것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의료환경도 변한다. 의료환경에는 의료제도의 변화 뿐 만이 아니라 의료기술의 발달, 인구구조의 변화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오늘 실습 나오는 학생들이 만날 의료 현실은 오늘이 아니라 10년 후의 세상이다. 그래서 점점 대답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김형규 교수(고려대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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