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선한의료포럼 공동주최로 ‘의료일원화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국민건강의 향상 이라는 이유가 제시되었고, 의료계와 한의계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었다. 모든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그 역사적 시발점에 있기에 필자는 의료일원화에 대한 해묵은 논쟁의 원인과 해결책을 해방 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서 찾고자 한다.

20세기에 들어 생리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서양의학이 유일하게 인정받는 정통의학이 되었다. 각국의 전통의학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한국도 식민 통치를 거치면서 의사와 의생 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공존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 의생은 명칭대로 의사보다 열등한 의료인으로 규정되어 한지(限地), 한년(限年)으로만 신규면허가 발급되었다.

해방 직후의 의료현실을 정리해 본다면 부족한 의료인의 수와 비싼 진료비로 일반인들은 의사에 대한 접근성이 낮았고, 한지·한년 의생 면허로 지방과 농촌에 한의를 배치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농촌지역 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한의가 담당하게 되었다. 1950년 1대 제헌국회에서 보건부의 의료법안에서 한의사를 의료인에서 제외하였는데 그 이유로 종래의 '동의보감' 같은 것에만 의지하는 비과학적인 것은 장려할 수 없다고 하며, 의사를 양성하고 한방약에 대해서는 연구하여 과학화 하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위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하고 한국전쟁 중 2대 국회에서 1951년 9월 6일 한의사를 의료법에 포함하는 수정안이 통과된다.

여기서 전통의학이 사라진 원인과 살아남은 이유가 설명되는데, 한국의 한의사를 포함한 전세계의 전통의학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의 한의사가 의료인으로 남게 된 원인은 당시의 부족한 의사수가 그 이유였다.

60년이 지난 지금 의료일원화 논의와 논쟁의 이유 역시 역설적으로 위의 두 가지 이유이다. 의사수의 꾸준한 증가로 인한 접근성의 향상과 의료보험의 도입은 국민들이 한의원으로 가는 발길을 되돌리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이유로 한의사들은 끊임없는 진료영역의 확대로 의료계와 마찰을 빚고 있다.

그러나 이미 100년 전에 지적된 한방의 비과학적 근거는 전통의학에 뿌리를 둔 교과과정에 접붙이기식의 현대의학의 접목과 현대의료기기의 사용만으로는 한방의 과학화를 주장하기는 역부족이다.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일원화의 논의는 면허일원화의 논의에 앞서 한의의 과학화에 대한 논의가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수긍하고 합의하는 한의의 과학화가 선행되고, 그 방법론으로 교육과정의 개편을 포함한 면허제도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학이라는 정의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면 모든 논의가 모래성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구 일
대한개원의협의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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