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 의대생·전공의 학부모협의회’는 더 이상 전공의들의 과도한 업무를 지켜볼 수 없어 병원계와 정부당국에 수련환경 개선을 적극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회는 전공의들이 하루 당직비 1만 원으로 주당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으며, 넘치는 업무로 인해 시간이 없어 합당한 의견을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모님의 치맛바람‘이라는 일각의 의견보다도, 바빠서 올바른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전공의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4월 1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출산에 따른 여성 전공의 수련환경 실태와 개선방안’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전공의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여성 전공의의 10명 중 3명이 자녀를 원하지 않고, 57%가 한 명의 아이만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의사중심의 대체인력 확보 △양질의 육아시설 확보 △수련기간 중 1 년간 출산 및 양육 휴직 보장 △남편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검토 △전체적인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가 비단 여성 전공의의 출산에 대한 정책수립뿐만 아니라 전체 전공의들의 전반적인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지난 24일, 보건복지부는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수련시간을 최대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하는 등 8가지 수련환경 개선 조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안에 따르면 주당 최대 연속수련시간이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응급실에서의 수련시간은 최대 12시간 근무 후 12시간을 휴식하도록 했다. 최대 24시간 근무하는 경우에도 하루(24시간)를 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당직일수는 1주일에 최대 3일로 제한하고, 휴일은 주당 최소 1일(24시간), 휴가는 연 14일을 보장하도록 했다. 그동안 일괄 지급으로 논란이 되었던 당직수당도 당직일수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이러한 조치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위반할 경우 해당 병원의 전공의 배정에 있어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

빠르면 2014년도 전공의 1년차부터 적용될 이번 조치는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온 전공의협의회의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두가 전공의 시절은 그런 것이라며, 도제식 교육에 토를 다는 사람들을 내치던 시절부터 전공의 복지에 신경을 써왔고, 이것을 협상테이블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소통과 대화를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수련환경은, 의료기술을 수출하는 정도까지 높아진 위상에 비추어봤을 때 다소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끼니를 거르고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하는 전공의들의 삶은, 우스갯소리로 아침 회진을 돌 때 환자와 전공의 중 누가 더 ‘stupor(혼미)’한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는 말로 묘사되곤 했다.

의대를 마치고 수련을 받고, 또 펠로우(전임의) 생활을 하기까지 같은 교수님 밑에서 배우게 되는 병원현실에서 전공의가 불만을 제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번 조치는 아무도 선 듯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문제였는데, 전공의협의회의 노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3년 만에 대한의사협회 산하 정식 직역단체로 등록된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동안 대공협이 정식 직역단체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공보의들이 의료계 현안에 대해 발언권조차 얻지 못하고 변두리에만 머물러있는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는 공보의들이 맡은바 책임을 다하면서, 나서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한다. 바야흐로 젊은 의사들의 힘을 보여줄 때다.

 

김기현 공보의<전남 강진군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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