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남소방안전본부에 근무하면서 전화를 통해 의료상담을 하고 구급대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일이 '원격의료'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처방전 발급이나 시술 및 처치 등을 하지 않더라도 증상과 과거력에 대해 묻고 향후 계획에 대해 지시하는 행위는 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처음 부임하여 업무내용을 알고 국가고시 직전 얼핏 보았던 원격의료에 대한 내용이 생각나 관련 법률을 찾아보고 혼자 내린 결론이었다. 이후 지인들을 만날 때 농담조로 ‘나는 주업무가 원격의료이니 의료계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의사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렇게 진담 반 농담 반 원격의료계(?)에 몸을 담고 있던 중 일주일 전에 흥미로운 뉴스를 접했다. 올해 4월 17일 대법원에서 대면진료 없이 전화를 통해 진찰하고 처방전을 발급한 혐의로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의사에 대하여 무죄 취지로 원심파기환송을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재판부에서는 전화진찰 자체가 직접 진찰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없다며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뉴스의 내용 중 또 흥미로웠던 것은 재판부에서 ‘첨단 기술의 발전 등으로 현재 세계 각국은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내용이었다.

원격의료는 그 개념 자체는 이미 30년 가까이 되었고, 기술도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 조정과 제도상의 한계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따끈따끈한 판결은 예상보다 급진적이라 놀라울 정도이다. 현재의 원격의료관련 법률에 따라 장비를 갖추고 원격지에도 의료인을 배치하여 의료행위를 하기에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경제적인 문제가 원격의료 성장에 있어 하나의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한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진료가 이번 판결로 인해 어느정도 인정받게 되었으니 돈의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된 셈이다.

매일같이 원격의료의 수요를 받아내고 있는 입장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급성 질환이 발생하여 당장 어찌할 줄 몰라 1339와 119를 찾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화를 통해 예방접종 상담을 하거나 암 환자의 진료, 수술 후 관리 등에 대해서도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상담에 그치기 때문에 그 효용에 한계가 있지만 처방전 발급이 가능하다면 지금 의원급 의료수요의 상당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술의 발전으로 언젠가는 의료인과 환자간의 직접적인 원격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끓어가는 물 안의 개구리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서서히 끓어가는 물이 아니라 튀김 기름에 던져진 개구리가 되어버렸다.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으면서 먹기 좋게 튀겨질 것이고, 살기 위해서는 조금 데이더라도 어떻게든 몸부림쳐야 한다.

 

한 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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