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졸업했던 대학에 갔다. 중앙도서관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입구 한 가운데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보았다. 마침 한참 논란 중인 진주의료원 폐업 관련 대자보였다. "가족도 집도 없는 처지에 병까지 얻어 치료받으며 연명하는데 여기서 나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라는 한 환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고, '경남도청이 적자를 이유로 의료원을 폐쇄 하려고 한다' '돈보다 생명이다! 우리 대학생들도 함께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학생 때는 이런 대자보를 볼 때, 나는 내 공부만 하고 있는 동안 이렇게 사회를 걱정하고 행동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의료인으로서 글을 읽으니 학생 때와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대자보의 내용이 너무나 편파적이었기 때문이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해야 한다'는 쪽의 주장은 "적자가 300억원 가까이 누적된 상태로는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폐쇄하지 않고 버티고 버텨도 몇 년 안에 결국 폐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반대쪽의 주장은 "돈을 이유로 어떻게 환자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기는 적자는 '좋은 적자'라고 한다. 어느 쪽 주장이 틀렸을까? 틀린 주장은 없다. 서로 근본적인 가치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영원히 결론이 날 수 없다.

공공재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정할 수는 없다. 한정적인 재정을 가지고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을 예방·관리 하는데 사용해야 할지, 뇌졸중, 심근경색이 발생했을 때 이를 처치할 수 있는 응급센터를 만드는데 사용해야 하는지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방문 진료를 나갔다. 아직 꽃샘추위가 한창이라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차가워서 겨울 옷을 입고 나가야 했다. 한 대상자의 집에 들어섰더니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그 곳은 기름값이 없어서 기름은 못 때고,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고 계신 할머니 집이었다. 난방을 안 한 집에 삼일 만 있어보라. 당연히 감기가 들어서 기침은 나고, 소화도 안될 것이다. 가뜩이나 뼈관절염이 있는 사람은 온 몸 마디마디가 다 아플 것이다. 그러면 감기와 관절염으로 병원을 찾게 된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이들에게 지원해야 할 것은 난방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기반인가, 아니면 병원을 찾을 때의 의료비인가?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가치가 절대적이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을 수는 있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 밑에는 그 가치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그 근거들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절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정적인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다. 그런 문제 앞에서 자신의 가치만을 내세우는 글을 만나면 숭고한 가치에 대한 공감보다는 그 오만함에 질려버린다. 절충(折衷, 꺾을 절, 속마음 충)의 한자어를 다시 풀어보고 싶다. 첨예하게 겨누고 있는 마음의 창끝을 꺾고 무뎌진 막대기로 승부를 보자.

박 지 훈
충남 보령시보건소 공보의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