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자란 그는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가 되어 1984년 9월 14일 부산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그가 바로 한국명 안연(安連),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의 주인이었던 알렌이다. 광혜원에서 시작된 한국의 서양의료는 1908년 6월 3일, 7명의 의사를 배출하게 되는데 이들이 한국 최초의 의사들이었다.

알렌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양의료가 한국에 전파되는 시기가 그만큼 늦춰졌을 테고 지금처럼 이렇게 뛰어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미래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서양 선교사들의 힘이 한국의 의료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누구라도 쉽게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게 100년이 흘렀고, 이제는 우리나라 의료를 배우러 몽골,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의사들이 방문하고 있다. 우수한 의료 인프라와 미국에 버금가는 한국의 의료기술을 배우러 직접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연수를 받으러 방문하는 외국의사들이 늘어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외국 의사·치과 의사의 국내 연수 중 제한적 의료행위 승인에 관한 고시' 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즉,임상경력이 3년 이상이고 3개월 이상의 국내 사전 교육을 받으면 최대 2년까지 국내에서 의료행위가 가능해진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의료관광을 활성화시키고자 외국의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는데,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니 단순한 참관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던 현실을 감안하여 이러한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한국의 의료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지만, 현재 한국의 의료현실을 감안할 때엔 심각한 우려가 예상된다. 먼저 연수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의사들은 우리나라 병원에서 펠로우의 위치가 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도 수도권 대형병원의 경우, 펠로우가 넘쳐나서 전공의들의 수련기회마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여기에 외국의사까지 더해진다면 배워야 할 술기들을 수련기간 동안 배우지 못하고 또 펠로우를 해야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펠로우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병원에 배치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지방병원들은 인건비를 아낄 수 있는 외국의사들을 대거 고용하여 기존 한국 의료진들의 자리가 흔들릴 수 있다.

또한 의료행위에 대한 책임소재의 문제가 있다. 외국의사가 수술을 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해당 외국의사에게 물어야 할지, 지도하는 한국의 의료진에게 물어야 할지 애매할 수 있다. 또한 해당 외국의사는 단기연수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 의료진보다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적을 수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복지부는 이번 고시가 “국내 의료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인적 네트워크'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 어색하게 들린다. 한국 의료계의 인적 네트워트가 붕괴되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네트워크가 진정한 의미의 관계형성일 수 있는지, 또한 그것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어떻게 기여한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냥 ‘글로벌’, ‘시장 진출’, ‘인적 네트워크’가 주는 긍정적인 의미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현재 한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발급받은 의사자격증을 가지고 외국에서 진료를 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 기회에 차라리 해당 나라들과 MOU를 체결하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한국 의사들도 연수과정 중에 외국에서 진료할 수 있고,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의료의 글로벌 진출을 꾀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김 기 현
전남 강진군보건소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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