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남 소방안전본부에서 구급대원에 대한 직접 의료지도를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법적으로 구급대원이 환자에 대한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의사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어 내가 그 지도를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의료지도업무를 하던 중 함께 생각해볼 만한 문제가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몇개월 전의 어느 오후다. 구급대원이 전화를 통해 의료지도 요청을 하는데 특이하게도 BUN/Cr 수치를 읊으며 어떤 조치를 취해줘야 하냐는 것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치가 워낙 높아 투석이 필요할 만한 상황으로 생각되었고 구급대원도 투석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가야하냐고 물었다. 요양병원에 있는 환자라 자체적으로 검사를 하고 투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구급차를 부른 상황이라고 하였다. 근처의 대학병원들을 떠올리며 구급대원에게 A병원이나 B병원으로 가야하지 않겠냐고 하자 이미 A병원에는 갔다가 거절을 당했다고 하며 (경제적 능력이 없는 환자도 일단 받아주는)C의료원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그쪽에서는 투석이 어렵지 않느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수치가 그리 높은데 거절이라니 아무리 응급실이 꽉 찼어도 그정도는 받아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거절의 이유를 묻자 구급대원의 대답이 당황스러웠다. 그 환자가 미수금이 있다는 것. 지난번에 A병원에 내원하였다가 돈을 내지 않고 나와버린 경력이 있어서 다시 진료를 봐 줄 수 없다고 했단다.

C의료원에서는 역시 투석이 불가하다고 하였고 구급대원이 B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하고 A병원에 전화하여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았다. 응급실에서 원무과로 연결해주어 물어보니 역시 해당 환자는 미수금이 있어서 어쩔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 해도 이것은 진료거부가 아니냐고 하자 전공의선생님도 환자를 보시고 결정한 것이라고 하여 더욱 의아했다. 전공의선생님이 환자가 미수금이 있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응급실에 다시 연결하여 전공의선생님과 통화한 결과 환자를 보기는 했으나 생체징후에는 별 이상이 없었고, 자신이 결정내린것이 아니라 원무과에서 접수가 안된다고 하며 환자를 봐줄 수 없다고 하여 구급대원이 돌아간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응급실 원무과는 미수금에 대해 윗선으로부터 질책을 받기 때문에 난색을 표하였고, 바쁜 전공의는 환자가 triage A의 응급환자가 아님임을 확인하고는 지나쳐버린 것이다.

최근 진주의료원이 폐쇄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개월 전의 위 사건이 떠오랐다. A병원에서 거부당한 환자는 결국 ‘미수금이 없는’ B병원으로 갔다. 만약 B병원에서도 미수금이 있었다면 인근의 C의료원으로 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치가 가능한 병원으로 갔다니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나 C의료원의 능력이 더 뛰어났거나 우리나라에서 (일시적이라도) 의료비 지불능력이 명확하지 않은 환자에 대한 보장이 강했다면 구급대가 길거리에서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2년의 복무기간 중 이렇게 미수금으로 환자이송을 거부당하고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단 한번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보고되지 않은, 미수금 때문에 환자이송이 거부당하는 일도 분명 있을 것이고, 구급대원이 실어나르지 않은 환자들 중에서도 미수금 때문에 진료가 거부당한 환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하나의 사건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공공의료의 운용방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

 

한 종 수
충남소방안전본부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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