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와 1339의 통합 이후 1339를 통해 많이 걸려오는 전화 중 하나가 어떤 과(科)를 가야 하는지에 관한 문의이다. 의료상담을 요청한다고 해서 받아보면 "가슴이 아픈데 무슨 과를 가야 하느냐"고 묻거나, "허리가 아픈데 정형외과를 가야 하느냐, 신경외과를 가야 하느냐"고 묻는 식이다. 처음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뭔가 불편했다. 나의 뇌구조 어디에선가 이것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는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이러한 질문이 잘못된 것인지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시간을 좀 가지고 생각해 본 결과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환자들의 질문 뒤에 깔려있는 하나의 생각 때문에 불편했던 것이었다. ‘특정 증상이나 질환은 특정 전문의에게만 진료받아야 한다’는 생각. 이는 곧 ‘전문의는 전문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진료할 수 없을 것이다’는 생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적으로 비효율을 초래한다. 특정 증상은 특정 전문의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의료자원이 적절히 이용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환자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호흡기내과 전문의만 찾는다면, 배가 아플 때마다 소화기내과 전문의만 찾는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면 쉽게 설명된다.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3대 다빈도 상병은 급성기관지염, 급성편도염, 다발성 및 상세불명 부위의 급성 상기도감염이다. 이정도 질환은 어떤 과 의원에 가더라도 처치가 가능하다. 이 환자들이 모두 호흡기 내과 전문의에게 진료받겠다고 줄을 선다면 얼마나 비효율적일 것인가.

극단적인 가정을 해 보았지만 내가 경험한 사례를 볼 때 부분적으로 이러한 비효율은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맨 앞에서 들었던 사례의 환자도 오른쪽 가슴팍이 아프다고 어느 과를 가야 하느냐고 물어 내가 ‘내과를 가시라’고 대답하자 ‘아무내과나 가면 되느냐’고 반문하였다. 심장과 관련된 질환을 심장내과전문의에게 치료받는 것은 필요하지만 흉통이 발생했을 때 심장내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필요할 지는 의문이다. 내가 의과대학에서 흉통의 감별법에 대해 배운 것은 의사로서 흉통을 감별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 심장내과 전문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일차의료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의료수요 발생시 처음 찾는 사람이 주치의라면 당연히 주치의에게 증상을 말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거나 전문의에게 의뢰되거나 할텐데 우리나라에는 일차의료를 하는 의사들이 모두 전문의이다 보니 사람들이 처음 의료시스템에 접근할 때 하는 고민이 자연스럽게 ‘어떤 전문과에서 나의 질환을 볼 수 있을 것인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전문의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는데, 이 방향에는 아마 정상적인 일차의료 시스템 확립에 대한 의지도 담겨있을 거라고 본다. 거의 모든 의대 졸업생 즉 일반의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전문의가 되자마자 다시 일반의 역할을 하게 되는 구조를 바꾸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미 60년간 고착된 이 비정상적인 일차전문의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한 종 수
충남소방안전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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