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천재이다.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경찰이 포기한 사건을 뚝딱 해치운다.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다. 복싱은 프로급이고, 체력과 운동신경까지 뛰어나다. 처음엔 셜록 홈즈에게 감탄하며 매료되어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작가 코난 도일이 의사라는 것, 홈즈의 파트너 왓슨 역시 의사라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한다. 나도 셜록 홈즈 처럼 될 수 없을까? 홈즈의 추리력이 짧으면서 강렬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의뢰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테이블에 앉자마자 홈즈가 의뢰인의 직업, 가족관계, 여행경력, 성격을 단 번에 맞추는 장면이다. 이 상황은 내가 진료실에 앉아있을 때, 환자가 들어와서 나의 앞에 앉는 상황과 비슷하다. 환자가 앉자마자 환자의 히스토리를 모두 맞춘다면 얼마나 신날까?

홈즈의 모델이 코난 도일의 의과대학 스승인 조셉 벨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코난 도일은 벨의 추론 사례 하나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아주 탁월하게 진찰했던 경우인데 한번은 그가 어느 민간인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은 군에 복무했었군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말이오” “그렇습니다. 선생님”
“스코틀랜드 연대였소?”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사관이었고?” “그렇습니다. 선생님”
“바베이도스에 주둔했군요”"그렇습니다. 선생님"

그가 설명해주었다.

“제군들도 보다시피 이 환자는 예의가 바른 사람인데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모자를 벗지 않는다. 이 환자는 제대 한지 오래되었다면 민간인 예절을 익혔을 것이다. 이 환자는 체면을 중시하는 듯이 보이므로 스코틀랜드인이 분명하다. 바베이도스라고 추정한 것은 이 환자가 걸린 병이 상피병이기 때문이다. 그 병은 영국이 아니라 서인도에서 걸리는 병이다.”

조셉 벨은 매우 똑똑하면서 존경받는 의사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 무려 두 가지 방법이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같은 환자를 세 번 보면 된다. 한 번 볼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차팅을 해 놓으면 위의 사실을 전부 알 수 있다. 다른 방법은 환자를 10분 동안 보면 알 수 있다. 10분이면 히스토리를 충분히 해서 주요 증사(Chief complaint)과 관련된 위험인자(risk factor)들, family history와 가족관계 그리고 직업까지 모두 알 수 있다.

보건소에 있으면 하루에 보통 40~50명의 환자를 본다. 환자가 적어서 30~40명이 온다면 충분한 history taking이 가능하다. 하지만 50명만 와도 벌써 마음이 조급해진다. 주요 증상만 듣고 약을 처방하고 싶어진다. 만약에 개원하여 하루에 100명을 본다면 주요 증상만 처리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선배 의사들은 훌륭하게 진료를 해 왔다. 안간힘을 내어 조셉 벨처럼 해온 것이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의료에 대한 요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의사들의 희생과 재능으로만 국민들을 만족시켜 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한 번에 환자의 history를 맞추는 셜록 홈즈나 조셉 벨보다, 10분 동안 충분히 환자와 이야기 하면서 history를 알아가는 대한민국 의사가 되고 싶다.

박 지 훈
보령시보건소 공보의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