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응급의료에 큰 돈을 투자한다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응급환자를 위한 이런저런 제도를 만들었지만 아직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응급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응급환자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응급환자분류를 한다. 응급환자가 아니면 처치 후 귀가조치하고, 응급환자는 해당과의 진료 아래 입원이나 수술이 결정된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응급환자의 분류에는 문제가 없다. 응급여부에 대한 환자와의 다툼이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의 처치는 각 병원 응급실에서 병원수준에 맞게 알아서 처리한다. 문제는 응급환자의 경우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당법)은 응급환자를 보기 위해 진료 각과 전문의가 상주해야 한다는 법인데, 쓸데없는 법이다. 진료 각과에서는 자기 병원에 오는 응급환자 유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대책을 가지고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분쟁우려 때문이다. 모든 병원에 모든 과 전문의가 상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가 수술시간을 놓쳐서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응급환자를 수술할 전문의가 상주해 있지 않아서 일까? 제왕절개를 빼고는 응급환자가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응급실에서 곧바로 수술실로 가는 일은 없다. 수술에 필요한 최소한의 검사와 처치에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면 on-call 전문의가 병원에 도착할 수 있다. 상주전문의가 꼭 필요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면 왜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는 것일까? 입원실이 없어서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이든, 수술이 필요 없는 환자이든 치료를 위해서는 입원을 해야 한다. 그런데 비어있는 입원실이 없으면 입원이 가능한 병원으로 환자를 보낼 수 밖에 없다. 중증환자라면 중환자실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중환자실이 비어있는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입원실도 없고 중환자실도 없다면 그곳이 권역응급의료센터이건 지역센터이건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런 상황은 외상환자에게도 같다. 전국에 수많은 외상센터가 생기고 외상전문의가 배치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지금도 심뇌혈관센터로 지정돼 있지 않지만 심뇌혈관전문의들은 휴일이나 밤에도 불려 나오고 있다. 응당법 때문이 아니라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보게 하려는 병원의 성화 때문이다.

응급실은 병원조직의 일부이고 응급환자도 병원에 오는 환자의 한 유형이다. 응급환자 문제를 의료전반의 문제가 아닌 응급실만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한 응급환자 문제는 이번에도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의사평론가>

김 형 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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