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현장에서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 대부분은 약의 처방을 원하고 빠른 효과를 기대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약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음대로 약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약을 짐작으로 먹는 경우, 장롱 속에 묵혀두어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약을 꺼내 먹는 경우 등 당혹스러운 사례가 부지기수다.

실제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 고지혈증 약을 처방 받는 환자 150명을 추적해 보니 거의 절반인 48%가 한 달 간 약을 복용한 후 알아서 약 복용을 중단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양약을 오래 먹으면 해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효과가 불확실한 민간요법에 대한 맹신이 그 이유였다.

미국의 경우 전체 처방약의 50% 정도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으며, 이렇게 잘못된 약 복용으로 인해 불필요한 추가입원이 전체 입원환자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미국 전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2배 많은 약 12만5천 명의 환자가 매년 처방전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아 사망하고 있는 셈인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경우는 백혈병이나 각종 암, 에이즈 같은 중증질환 환자의 경우에도 약을 제대로 먹지 않다가 질병이 악화되거나 생명을 잃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환자, 의료진,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민간요법이나 한방치료는 해로울 것이 없지만 양약은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편견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양약 중 상당 부분은 과거 경험적으로 사용했던 약초나 민간요법의 재료들로부터 특정 효능이 있는 순수성분만을 추출하여 발전시킨 것 들이다. 때문에 그 성분이 무엇인지 모른 채 복용하는 민간요법보다 오히려 부작용도 적고 용량 조절이 쉬워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혈압 약이나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이 장기적으로 복용이 필요한 약일수록 안전성이 더 뛰어나다. 수십 년간 복용해야 하는 약이기에 작은 부작용이라도 발견되면 일찌감치 시장에서 퇴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진료시간에 쫓기는 의사나 약사들로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지만, 사실 장황한 설명보다는 대개 짧고 간략한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환자를 이해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즉, 환경상 안 된다,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작은 실천이 환자의 치료에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늘 의사와 약사들의 실천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의료진 개개인의 노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정책적인 뒷받침이다. 개인의 노력은 적절한 동기부여나 환경적 뒷받침이 없다면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의료기관 평가 시 올바르게 약을 복용하는 방법에 대해 잘 설명을 했는지를 평가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한 매년 버려지고 있는 약의 양을 조사하여 이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발점으로 최근 보건복지부는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와 함께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가 이끄는 올바른 약 복용을 위한 락앤약 캠페인을 후원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2011년부터 환자들에게는 질환 별 약을 올바르게 먹는 방법에 대해, 의료진을 위해서는 질환 별 복용법은 물론 이를 잘 설명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자료를 개발하여, 이를 널리 확산하고자 애쓰고 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해 환자들이 원한다면 약 복용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구축해 두었다.

이러한 작은 출발을 기점으로 환자, 의료진 그리고 정부 모두 좀 더 환자들의 올바른 약 복용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길 기대해 본다. 이는 당장의 환자 자신은 물론, 환자 가족들의 치료 질을 개선시킬 것이다. 또한 새 정부의 큰 부담이기도 한 의료비 재정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