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지난달 21일 2013년도 의원급 환산지수를 최종 2.4%(환산지수 70.1원)로 결정했다. 2.4%라는 수치는 지난 10월 협상시 건보공단이 마지노선이라며 제시한 수치였다. 의협은 날로 열악해지는 의원 유형의 생존을 위해 3.6% 이하는 절대 수용할 수 없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사상 최초로 ‘보류’ 조치를 내릴 정도로 정부는 의원급 수가 결정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다. 페널티를 적용하자니 의협의 저항이 우려되고, 공단 최종안대로 가자니 그간의 관행을 깨는 일이어서 꺼려졌을 것이다. 결국 의협의 불참을 구실 삼아 결정을 미루다가 2.4%로 확정했다.

이번 수가결정 진행과정에서 수가결정구조와 건정심 의사결정구조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우선 수가결정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말로만 협상’이라는 데 있다. 공단과 의약단체들 사이에 협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상, 공단의 일방적 통보를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이 되고 있다. 협상이란 상호 호혜의 원칙 하에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접점을 찾아가는 행위다. 그러나 공단과의 협상은 매우 불평등한 방식이다. 매년 공급자 측에서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수치를 제시하지만, 공단은 재정운영위의 가이드라인을 핑계로 대며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자신들의 수치를 강요한다. 이번 협상에서도 공단은 의원급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하고 일방적인 수치와 무리한 부대조건을 제시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협상 결렬의 책임이 공급자 한쪽에만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는 점이다. 12월 21일 건정심에서는 의원급에 페널티를 적용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은 점을 들어 인상률을 깎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단이 제시한 안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면 성실한 것이고, 거부하면 불성실하다는 논리다.
여기서 수가결정구조의 문제는 자연히 건정심의 문제와 오버랩된다. 건정심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수가협상 결렬시 조정‧중재하는 일이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결렬된 협상 사안을 심의해야 하지만, 공급자단체에게 페널티를 얼마나 적용할지만을 의논한다.

'가입자:공급자:공익=8:8:8'의 구조가 언뜻 공평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16:8이나 마찬가지다. 가입자 8명과 정부측 인사가 대다수인 공익 8명이 대부분 같은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현 건정심 구성 하에서 공급자들은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올해 의원급 수가결정 과정에서는 그나마 16:8도 무너졌다. 일부 공급자들이 정부와 공단 편에 서서 의협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린 것이다.

이에 제안한다. 수가결정구조에서 건정심을 배제시켜야 한다. 별도의 엄정하고 중립적인 기구를 설치해 합리적으로 수가를 정해야 한다. 공단의 자료독점권도 문제이므로, 공급자측에 자료제공을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건정심 구조를 재편성해야 한다. 노-사가 1:1의 동수로 협의구조를 갖춘 노동위원회처럼, 의·약·치·한 등 공급자 각 단체와 정부 및 가입자가 1:1의 협의체를 갖춰 운영돼야 한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자 측에서도 건정심 및 수가결정구조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의협은 새 정부와 이 문제에 대해 긴밀히 대화하고 협의해, 의료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충실히 반영된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윤 창 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