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열린 해이다보니 일년 내내 선거철이었다. 신문에는 연일 후보와 정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다른 소식들은 모두 잠식되는 듯하다. 의료계 뉴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의료계의 입장전달을 위해 의협에서 전면 파업을 예고하며 토요일 휴진을 시행했지만, 느껴지는 체감온도가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후보들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예산은 어떻게 충당할 건지 걱정부터 앞선다.

5월, 노환규 회장 출범이후 의협은 의사의 권익과 환자의 올바른 건강권행사를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의사단체내에서도 소외되었던 전공의들의 처우개선문제에 의협이 앞장선 것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주5일 40시간 근무’는 사실 전공의만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면이 있다. 대형병원의 경우, 근무형태를 오늘 당장 이런 식으로 바꾼다면 일대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응당법’ 발표 이후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주 100시간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적절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대정부 투쟁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가능하면 전공의들의 근무부담을 줄여나가는 쪽으로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의료상황은 그동안 지나치게 낮은 수가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비급여 영역이 확대되었으며, 그로 인해 전체 의료비용의 증가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 모든 비용증가의 책임을 의사에게만 묻고 있으며, 의사들의 희생은 당연시되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경실련은 의협의 대정부투쟁에 대해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라고 폄하하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치졸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실정이다. 누가 옳은 것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최상위권학생들은 의대를 진학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의예과 합격선이 400점 만점에 390점 이상이니, 의대진학은 실로 선택받은 자의 몫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부쩍 높아진 의대진학열풍은 최근 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과 맞물려 성적이 우수한 이공계학생들까지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는 의전원설립과 의대 내 여성비율의 증가로 향후 5년간 2000명의 공보의가 부족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농어촌지역에 의무적으로 봉사할 것을 근거로 특정대학에 정원 외 입학생을 할당하는 방법, 또는 아예 의료취약지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면허제도 도입 등을 검토 중이다. 하기야 ‘1인 1주치의’ 제도가 가능하다면 가장 훌륭한 제도일지 모르겠으나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사실 정확하게 원인 및 병태생리를 알고, 치료법을 아는 질환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까지 상당수의 질환은 경험적으로 접근하기도 하며(그래서 증거중심의학이 필요하기도 하다), 원인보다는 증상완화를 목적으로 한 치료가 통용된다. 현실적으로 왜곡된 의료현실의 원인이 ‘저수가정책’이라는데 있어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데, 이 원인에 대해 치료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새삼 답답하다.

매년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꿈꾸고 있다. 우리세대에서 저수가정책의 변화가 없으면 앞으로 의료시장도 ‘치킨게임’(chicken game)의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장이 되는 특정과에 몰리는 현상, 힘들지만 꼭 필요한 진료과목에 대한 기피, 개원하면 모두가 미용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제는 좀 더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때인 것 같다.

2012년을 마무리하며 돌아본 현실은 씁쓸한 면이 많다. 하지만 그동안 의사단체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에서 희망을 본다. 오는 2013년에도 공보의와 전공의, 또 의협이 모두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가 현실을 충분히 공감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한다. 소통에 있어 먼저 손을 내미는 자세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김 기 현
강진군보건소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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