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슈퍼에서 감기약과 같은 일반의약품들을 팔기 시작했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안전성이 입증되고 특별한 부작용이 없으면서도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약들이 있다. 대통령도 약속했고, 장관도 약속하고, 시민단체도 지지했는데 슈퍼판매를 하면 약화사고로 온 국민이 피해를 입을 것처럼 관련단체에서는 반대를 했다. 국회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국민들은 국회가 슈퍼판매로 인해 약화사고가 생길 경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관련단체의 손해를 어떻게 보상하느냐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올해 초 정부는 대학병원에 다니는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개원의에게 돌려보내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만성병은 집 근처 가까운 의원에서 단골 주치의를 두고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제도를 도입한 정부의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물론 정부가 이 정책을 시행하는 진짜 이유가 보험재정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 후 많은 환자들이 1차 의료기관으로 갔지만 최근 일부 환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1차 의료기관 치료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료비 삭감이 그 원인이다. 사정은 이렇다. 당뇨환자가 당뇨병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당뇨병 자체가 일종의 성인병이다 보니 고혈압이나 관절질환과 같이 여러 가지 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당뇨병은 시간이 지나면 합병증을 피할 수 없다. 자연히 처방하는 약의 종류가 많아지고 검사가 많아지게 된다.

문제는 1차 의료기관에서 처방약의 종류가 많아지거나 검사가 많아지면 삭감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다시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온 환자들은 본인 부담률이 높아지니 자신이 내야 하는 돈이 늘어나는 불이익을 받는다. 환자가 돈을 더 내건 말건 정부입장에서는 보험재정을 아꼈으니 성공적인 정책인 셈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치러 질 선거에 나선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참 어지럽다. 주위사람들에게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후보에 대한 논쟁은 뜨겁다. 투표는 하지만 공약을 보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후보들도 그걸 아는지 공약인지 희망인지 모를 것들을 내놓는다.

그중에서도 의료관련 공약은 엇비슷해서 누구의 공약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중에 어떤 공약이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일반의약품 슈퍼판매조차도 몇 년이 걸리고 공약과 관계없이 현실에서는 모든 정책이 의료비 줄이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 대선에 거는 기대가 그리 클 리 없다. 그나저나 국민들이 그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의약평론가>

김 형 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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