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의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드라마 단골 주인공 직업중에 하나인 것만 봐도 그렇다. 돈도 꽤 잘 벌고, 전문성이 있으며, 명예도 있는 직업이다. 예전에 비하면 소득도 많이 줄었다지만,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들과 비교해보면 훨씬 잘 나간다. 변호사의 위상도 옛날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졌고, 드라마 '허준'때만 해도 잘 나갔던 한의사도 소득이 많이 줄어버렸다. 어디가서 부모님 직업이 의사라고 하면 어린 자식들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런데 왜 의사들은 불만이 많을까? "아니 의사들이 왜 파업해? 돈 잘벌고 잘나가는 거 아니었어?"

맞다. 아직도 의사라면 잘 나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수련 후에 돈은 잘 번다. 하지만 필자는 돈만 많이 번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지지는 않는 다는 걸 대한민국의 의사들을 보면서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현재 의사들은 불만이 많다. 한국의사들의 가슴속에는"자유" 와 "정의", 그리고 "양심"에 대한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 가 없다. 진료를 의사의 재량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의 급여기준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보험청구비가 삭감되어 처방한 의사가 보험공단에 돈을 물어줘야 된다. 이 급여기준이란 것이 지나치게 빡빡하고, 최신 의학 흐름에 쉽사리 뒤쳐지기 때문에 의사가 생각하는 최선의 진료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급여기준은 의사의 족쇄다.

또 우리에겐 5분 이상 환자를 볼 자유가 없다. 한국 내과의사의 일일평균 환자 수는 70여명, 이비인후과, 정형외과는 100여명이다. 환자 일인당 받을 수 있는 진료비는 정해져 있는데- 이 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에 박리다매 형태로 환자 진료 시간을 줄여 여러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왜 꼭 돈을 벌려고 하냐고? 소신껏 진료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의사도 천사가 아닌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이다. 병원이 망하지 않고 가족들 먹여 살릴 만큼 벌려면 저 정도는 벌어야 되는 것이고 그 정도 볼면 환자를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거다.

우리는 "정의"가 없다. 만약 물가 상승률이 평균 4%인데 임금인상률이 10년 동안 1-2%대라면 직원들의 기분이 어떨까. 전보다 가난해진 건 둘째 치더라도, '이건 옳지 않다'는 마음, 나에 대한 대우가 정의롭지 않다는 불만이 생길 것이다. 의사가 딱 그런 상황이다. 심지어 어떤 해는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였는데도, 인상률은 제자리이다. 건강보험의 인상률이 10년 동안 1-2%를 기어간다. 우리의 불만도 10년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다. 그래도 아직은 '기득권층'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에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불만이 꿈틀대는 건 이래서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양심"을 지키고 싶다. 현재 의료시스템은 환자를 자주, 많이 봐야 한다. 의학적으로 환자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데도, 환자에게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권유하지 않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양제 놔주세요~', '감기 주사 놔주세요~'라고 하는 환자에게 '효과 별로 없어요' 라고 얘기 하지 못하는 현실. 오히려 그런 환자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현실. 현 의료 시스템은 의사에게 저울에 '양심'과 '돈'을 놓고 매일 저울질하게 하는 것이다.

박 제 선
조천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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