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 군자는 어찌하면 바르게 살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돈을 많이 벌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대 사회에서 군자는 성인과 같은 일종의 도덕적 영웅이고, 소인은 그런 영웅의 인도를 거부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존재였다.

현대에서 고대의 도덕적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런 높은 기준을 따라 갈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도덕적 영웅은 존경받을 만한 존재이지만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더 윤택한 개인의 삶을 영위하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고대 소인의 삶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없다.

고대의 이런 개념이 현대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할까? 소인과 군자 중 어떠한 인간형이 현대적인 것인가? 현대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을 서로 상충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군자와 소인을 각각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 유형으로 인정해야 한다. 현대에서는 합리적인 경제활동에 종사하면서 이해관계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공공선의 증대에 관심을 가지는 시민의 자질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정당한 이익 추구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면서(소인적) 동시에 자율적 존재로서 삶의 방향성을 설계하는(군자)의 삶이 필요하다.

의료에서도 이런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미 개인주의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서양에서는 이러한 개념의 정립이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유교적 사고에서 정체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개념의 정립이 안 되어 국민들이나 의사들이나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은 소인이고, 의사들은 고대 군자의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사들도 본인들은 군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잘 못된 개념에 젖어 혼란스러워 한다. 일반 국민이나 의사 다 같은 사회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무료진료를 하는 의사들만 진정한 의사로 인정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대에 살면서도 고대의 철학적 사고에 젖어 있다. 한국에서 현대 과학지식은 넘쳐나는데 이를 뒷받침하고 나아가야할 인문학적 바탕이 너무나 빈약하다. 한국의사들이 겪어야 하는 성장통으로 보기에는 부담감이 너무나 크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군자 같은 소인 혹은 소인 같은 군자의 의사상이 하루 속히 자리 잡아가야만 한다. 서양에서 중세이후 체계화되어 내려온 전문직업성(프로페셔널리즘)이 한국에서 뿌리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왜곡된 사고를 수정해 갈 수 있을까? 먼저 의사들이 변해야 할 것 같다. 의사가 되려고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의대생들에게도 올바른 의사상과 물질관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의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개인윤리와 집단윤리를 혼동하지 않도록 보수교육 등을 통해 윤리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환자를 배려하고 본인의 건강을 잘 유지하며 정당한 진료 행위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한정된 보험급여 내에서 만들어진 심사규정을 넘어선 의사들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강요당하고 있다. 의학적 치료를 무시하는 삭감과 약제비 삭감 등 의사의 전문성을 위협하는 심사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귀찮다거나 작은 액수라서 포기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혜와 요령, 강한 의지 그리고 의료보험 규정에 대해 대항 할 수 있는 절차 등 알고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법정까지도 가서 끝까지 의사의 전문성을 주장하고 잘 못된 심사규정 등을 고쳐나가야 한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 의사의 전문성을 보장되고 환자의 진료수준은 향상 될 것이다.

의사들은 이에 대항할 무기(전문지식, 올바른 의학지식 홍보, 이의신청, 법정소송)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무기들을 가지지 못 한다면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이상은 단지 신기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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