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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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지어 보면
눈가엔 잔주름만
서리꽃으로 피고

골다공 생긴 가슴뼈를 뚫고
냉랭히 지나가는 바람 앞에서
마지막 향기로
꽃의 영광을 외친다

식어버린 체온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긴 나비
불현듯 그리워져서

검게 부르튼
첫 키스의 입술을 주워
가슴 갈피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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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본명 김영철): 부산의대 졸. 김영철 내과 의원.

미네르바(2006) 등단.

갱년기 증상을 열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시(詩) 또는 詩를 쓰는 일이다. 가나다 순으로 늘어놓으면 감정 변화, 골다공증, 관절통, 근육통, 기억장애, 두통, 발한, 불면증, 불안, 빈맥, 생식기 통증, 성욕 감퇴, 소외감, 수면장애, 안면홍조, 요통, 우울, 위축성 질염, 피로감 등이다. 이처럼 詩가 되는 이유는 갱년기(Climacteric)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사다리(Klimax)’이기 때문일 게다. 가임기에서 폐경기로 바뀌어가는 피할 수 없는 우리. 오르다 어차피 내려가야 하는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밟아 내려서며 꽃과 나비와 키스는 그렇게 퇴행(退行)한다. 서리 내린 꽃에 흔적으로 남은 나비의 입술은 냉랭히 식어가고 심신의 모든 것이 휑하게 허전해지고….. 바로 갱년기다. 바로 詩다. 그래서 갱년기(更年期)에 대한 고백은 갱년을 詩처럼 겪고 있는 이가 가장 절절하게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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