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339와 119가 통합되었다. 워낙 조용히 이루어져서 의료인들도 아직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상황인데 지난 6월 기존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던 응급의료정보센터의 주요 기능이 행정안전부 산하의 소방방재청의 기능으로 넘어왔다.
소방방재청에서는 기존에 추진하던 바와 함께 이 기회를 통해 구급분야의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9 신고를 통합적으로 받는 종합방재센터(종합상황실)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센터 내에 구급상황관리팀을 따로 만들어 기존 1339인력을 흡수하고 기존의 의료지도의사와 함께 운용하고 있다. 응급의료체계의 최전방을 맡고 있는 119의 활동에 따라 응급환자의 생존이 크게 차이가 날 것은 자명할 터이다. 운이 좋은 것인지 충남소방안전본부의 의료지도의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119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응급의료 발전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이 중요한 순간에 일반의인 내가 의료지도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은 비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재 나의 역할은 주로 구급대원에게 의료지도를 해주거나, 응급상황의 신고자에게 응급처치법을 알려주는 것, 일반의료상담을 원하는 사람에게 의료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마지막 역할은 1339가 통합되면서 추가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화를 받아주는 것인데 구급역량을 강화한다면서 소방조직 내에서 의사의 역할이 이에 제한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재는 나의 능력의 한계로 상담조차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 읊어주는 수준이지만 현 시점에 필요한 의사는 재난관리 역량을 갖추고 임상에도 능숙한 전문의이다.
응급의학과에서는 응급 현장에서의 진료의 한계에 대해 제한된 정보, 시간의 부족을 들고 이에 맞는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경우에는 전화상으로만 상담하기 때문에 위의 제약사항이 더 심하다. 일반인 응급처치의 경우 제한되더라도 정확한 정보, 최소한 환자가 자발호흡이 있는지 없는지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는데 당황한 신고자는 그러한 정보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응급처치를 빠르고 간단하게 지시해야 한다. 구급대원 의료지도의 경우에도 현장의 바이탈 사인정도는 정확히 알 수 있고 구급대원 분의 환자 파악을 믿고 지시를 내리는데 극히 제한된 구급차 내부의 환경에서 경험이 일천한 나로서는 적극적인 처치지시가 어려워 안타깝다. 의료지도의사로서 임상경험이 많은 의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얼마 전 구미 불산사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재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한 사람의 의사가 모든 재난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알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예상되는 재난에 대한 대처법은 숙지하고 또 어떤 재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인명구조로부터 시작하여 환자를 의료기관에 적절하게 배분하는 법을 아는 의사는 필요하다. 이번에 구미에서도 구급대원 분들이 꽤 고생을 하셨을 것이고 밀려드는 환자에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는 정신이 없었을 터이다. 부경지역 구급대의 의료지도를 담당하시는 공중보건의 선생님들께서 재난상황을 잘 관리하셨어야 했을 텐데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소방안전본부에는 이러한 재난상황과 응급상황의 자원배분 및 관리까지 능숙하게 결정해 주실 수 있는 의사선생님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아직 소방조직은 위와 같은 능력을 갖추신 선생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구급대원 의료지도를 하시려 해도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고, 응급의료자원을 관리해보려 해도 기존에 프로세스가 없어 힘드실 것이고, 구급대원 교육을 하려 해도 기존에 제대로 되지 않던 것이라 다시 검토하셔야 할 것이고, 개선을 요청해도 공공조직이라 빠르게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자리에 맞는 의사선생님이 계신다면 금방 해결될 문제이다. 지금 소방조직은 의료자원에 대한 목이 많이 말라 있는 상태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도 이제 한 단계 올라설 때가 되었다. 병원 내 응급실의 임상을 아무리 발전시켜도 병원 전단계의 발전 없이는 효과에 한계가 있다. 단순히 상담만 해주는 'Medical Advisor'가 아닌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을 이끌어주실 'Medical Director'가 시급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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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수 공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