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지난 1999년 11월 30일 '준비안된 의약분업제도' 시행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의 의사들이 투쟁의 깃발 아래 장충체육관에 모여 '전국의사결의대회'라는 대정부 투쟁의 서막을 연 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의사들은 2007년까지 투쟁의 정기를 놓지 못하고 면면히 대정부 투쟁을 개최하여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잡고자 노력해왔다.

2007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3만 여명의 의사가 운집한 가운데 열린 '의료법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회원 궐기대회' 이후 약 5년 만에 의료 왜곡을 조장하는 의료악법인 포괄수가제, 응당법, 도가니법을 철폐하여 국민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의사들의 염원이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역 광장에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이 왜 진료까지 포기하고, 장대비를 몸으로 맞으면서까지 서울역 광장에 모인 것일까?

그동안 의료계는 국민건강권 수호라는 신념 하에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의료계를 옥죄는 일방통행식 보건의료정책을 폄으로서 의사들을 통제해 왔다.

지렁이도 밟으면 움찔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의료계는 과거 12년 전보다 더욱 단결하고 뭉쳐야 한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냉소적 자세로 머물러 있다간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쓰나미에 휩쓸려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의사들이 비바람을 맞으면서까지 서울역 광장에 모인 것이다.

어느 누가 진료실을 비우고 옥외집회에 나서길 좋아하겠는가? 정부에서는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단발성 집회로 끝날 것이라고….

그러나 의료계도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은 비단 의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보건의료인들과 국민들을 위한 공동의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의사들만이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잡기 위한 투쟁에 앞장섬으로서 집단이기주의니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제는 의사뿐만 아니라 의료기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원무행정직 직원 등 모든 보건의료인들이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선해 나가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 7일 일산 킨텍스에서 '제1회 한마음 전국 의사 가족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날 행사는 의사를 포함해 모든 보건의료인이 참여하여 소통함으로서 의료계의 결집된 의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국민과 함께 소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참된 의료 제도를 마련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힘은 의사들이 아닌 정부와 정치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의사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제1회 한마음 전국 의사 가족대회' 개최를 계기로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의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의사들의 절규를 허무한 메아리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의사를 배제한 채 의료정책을 결정할 경우 의사의 진료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며, 이는 곧 국민의 건강권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의사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 줄 것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 이재호
의사협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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