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토요일엔 피곤이 몰려온다. 요즘엔 술도 잘 안마시 니 간 때문은 아닌데, 방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하루가 쉬이 지나간다.

일요일 아침의 늦잠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비로소 휴일의 시간을 즐기게 된다.

가보고 싶었던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진료 보는 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느라 분주하다.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 즐거움은 언제나 새롭다. 시간이 허락되면 의료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보통 시간이 일요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 다음날 근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씩 나가는 봉사활동은 일상의 자극이 되곤 한다.

이렇듯 주말의 행복이 최고조에 달하게 될 즈음 나의 휴일은 끝이 난다. 떠나가는 일요일의 마지막 시간을 붙잡고 놓치기 싫어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 새삼 놀라지만 늦은 일요일 저녁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겨우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았는데, 떠나야만 하는 심정이랄까. 내일 당장 헤어져야하는 사람과의 하루처럼 간절하고 소중한 시간이 또 있을까. 그렇게 휴일은 항상 부족함 그 자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개미와 베짱이’ 우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근면한 개미의 모습을 본받으라며 강요(?)받았지만 무더운 동남아 국가 필리핀에선 개미를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는단다. 오히려 개미처럼 너무 열심히 일하면 더위를 먹을 수도 있으니깐.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사는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한량이겠지만 나는 그런 ‘베짱이 정신’을 찬양한다.

최근 모 산부인과의사의 시신유기사건과 김포공항에서 불미스런 행각을 벌인 의사이야기를 접하면서 만약 그들의 삶에 여유가 있었다면 그래서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며 왜곡된 관념을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언제나 의사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면 사회 지도층의 일탈 또는 일부 의료인의 행위일 뿐이라며 일축하곤 하지만 그것은 의료계 스스로의 위안 아닐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성범죄들 속에서도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 대처방안들이 각 정부 부서별로 수십 개씩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이 또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 즉 이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통한 올바른 인지체계를 가지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도 급선무 아닐까.

병원생활을 하면서 좀 더 여유를 갖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처럼 당장 파렴치한 범죄로 인해 들끓는 여론 앞에서도 해법은 성교육이라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걸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얼마 전 SNS를 통해 ‘돈 이야기 당당하게 하자’고 한 노환규 의협회장의 ‘배짱’에 찬성표를 던지고 싶다. 2010년 기준으로 전문의 평균 급여가 월 400만 원 정도라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끼자고 한 것인데 그동안 베짱이로 살고 싶어도 ‘배짱’이 없어서 속 시원히 이야기하지 못했던 의료계를 따끔히 꼬집은 것이다.

간절한 한밤을 보내고 난 후에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은 더없이 매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렇게 매주 한 번씩 달콤한 휴일과 이별을 한다.

어차피 우리 인생이라는 것, 내가 갖지 못한 그 무엇에 대해 끊임없이 푸른빛 희망만을 그리며 사는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면 나도 이번 주말부터는 배짱 있는 베짱이처럼 살아봐야겠다.

김 기 현
강진보건소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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