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학창시절만이 갖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겨울방학에 비해 여름방학은 짧지만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한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가족들과의 여행도 여름방학이다. 꿈꾸던 배낭여행도 여름방학이다. 겨울방학에는 날씨가 추워서 짐도 많고 다니기도 어렵다.

보통 방학은 8월 말까지이다. 새 학기는 9월 초에 시작된다. 그런데 의과대학은 좀 다르다. 8월 중순에 개강을 한다.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빨리 개강을 하는 이유는 수업일수 때문이다. 9월 초에 개강을 하면 12월 초가 돼야 예정된 수업일수를 채울 수 있다.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12월 말이다.

그런데 학사일정 상 성적 입력은 늦어도 12월 초까지는 해야 한다고 한다. 성적입력이 늦으면 낙제자 선정이 늦어지고, 낙제자 결정이 안 되면 전체 학생들에 대한 신학기 등록금 고지가 늦어진다. 그것 말고 또 있다. 대학에서는 12월부터 입시가 시작되는데 학교의 모든 행정력이 여기에 매달린다. 그러니 재학생의 학사업무는 그 전에 끝나야 한다.

학부 1, 2학년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임상실습에 나와 있는 3, 4학년은 방학이 더 짧다. 2학년이 끝나고 3학년부터 임상실습에 들어가는데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만에 실습이 시작된다. 겨울방학이 1주일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2학년 2학기 성적이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만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습을 시작한 후에야 성적이 확정되어 실습 중에 낙제를 하는 일이 생긴다. 참 난감한 일이다. 2학기 최종성적이 나온 후에 임상실습을 시작하면 그런 일이 없겠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커리큘럼에 나와 있는 실습 주수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실습 주수를 줄이려면 실습학생을 받는 과에서 학생실습을 포기하면 되지만 실습학생을 포기하려는 임상과가 없다. 학생 때 임상실습 경험이 나중에 전공의 지원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그러다보니 의대 4학년 학창시절 중 2년은 거의 방학이 없는 셈이다.

그럼 누가 이런 황당한 실습 스케줄을 만들었을까. 원래는 학기마다 충분한 방학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생긴 의사실기시험이 방학에 영향을 미쳤다. 실기시험이 9월에 시작되어 학사 일정이 원래 커리큘럼보다 2~3개월 당겨진 것이다. 학사일정을 의사국시실기시험에 맞추다 보니 2~3개월이던 방학이 없어져 버렸다.

의사국시에서 실기시험은 필요하지만 엉뚱하게 방학이 없어져 버렸다. 그건 학교가 새 제도를 커리큘럼에 반영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준비하고 수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턴제 폐지를 비롯한 포괄수가제도,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 등도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를 준비하고 수용하는데 필요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필요하고 취지가 좋다고 모든 제도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의약평론가>

김 형 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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