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칠성사이다에서 콜라와 비교마케팅을 하며 광고를 한 적이 있다. 콜라에 장미꽃을 꽂아놓았을 때와 사이다에 장미꽃을 꽂아놓은 것을 비교해 칠성사이다에 꽂아놓은 장미는 일주일씩 가는 반면 콜라에 꽂아놓은 장미는 금방 시든 것을 비교해놓은 광고였다.

어린 나에게 그 광고는 아주 효과적이어서 그 이후로 콜라는 잘 먹지 않고 있다. 이렇게 콜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차에 의료봉사 차 말라위에 다녀와서는 콜라회사들, 특히 코카콜라에 대한 개인적인 소심한 불매운동을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말라위에서는 코카콜라가 대인기다. 현지 병원에 있으면서 무슨 행사를 하던지 공식음료, 접대용 음료는 콜라와 환타였다. 물을 공급하는 펌프가 없어서 고생하는 마을의 상점에도 코카콜라가 들어와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코카콜라의 비전이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콜라를 마시게 하는 것’이라는데 그 실현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비전을 들으며 훌륭한 경영의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말라위 현지에서 이 비전이 서구식 팽창주의에 근거한 파괴적인 무지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말라위에서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병원 주변으로 수km이내에 있는 몇 개의 마을에 outreach clinic이라는 이름으로 왕진팀을 파견하고 있었다. 나도 여러 번 따라나갔는데 한번은 마을의 청년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무분별한 코카콜라의 음용을 보며 비판적인 시각을 키워가던 나는 콜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와중에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

그 동네의 여인들은 영아들에게 모유대신 콜라를 먹인다는 것이었다. 모유보다 콜라가 영양가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코카콜라의 마케팅은 아프리카 작은 나라의 한 마을에 침투하여 그 기반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이는 그 마을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 번은 현지인의 가정에서 일주일간 숙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의 아이는 콜라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루는 그 집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왜 좋지도 않은 것을 아이가 그렇게나 많이 먹도록 두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자신은 하루에 네병씩 먹는다고 했다. 그로 인한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느니 성인병 예방이라느니 건강정보가 차고 넘친다. 다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을 해야 한다, 금연을 해야 한다, 식이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처럼 알고 있다.

그러나 말라위는 그렇지 않다. 당장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약자들, 교육받을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약자들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 들어가 눈 앞에서 달콤한 음료를 흔들어대는 콜라회사 앞에 사람들은 별다른 주의 없이 손을 내밀고 만다. 내가 소심하게 간간이 주변사람들에게 코카콜라의 불매를 종용하는 이유이다.

한 종 수
충남 소방안전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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