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다양한 환자를 만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다양하다는 것은 질병의 다양함이 아니다. 환자들이 증상을 호소하는 모습, 처치에 대한 반응과 의사에 대한 기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한 번에 만족 시키기가 어렵다.

지난주에 대천해수욕장으로 의료지원을 나갔다. 해수욕장에서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넘어져서 까진 사람, 조개껍데기나 유리에 발이 베인 사람이다. 가끔 특이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익수자를 제외하고는 위중한 환자는 없는 편이다.

환자가 없어서 바다 구경, 사람 구경을 하고 그것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 환자들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왔다. 까진 사람, 뾰족한 곳에 발이 깊이 베인 사람, 코피가 난 어린아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들이었다.

환자 5-6명에 보호자들까지 들어오니 갑자기 진료소가 가득 찼다. 한가할 때 한 명씩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환자들을 모아놓고 보니 이들의 반응은 많이 달랐다. 살짝 까진 사람들 중에는 아파죽겠다고, 소독약만 가까이 가도 비명을 지르면서 발을 빼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발이 깊이 베여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씁, 읍" 소리 한 번 내고, 처치 내내 "괜찮습니다. 허허."를 연발 하는 분도 있었다.

처치 후에 나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드레싱만 해 줬을 뿐인데도 내가 머쓱해 질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감사하다고 하는 분도 있는 반면, 붕대라도 감아줘야지 이게 다냐고 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기대와 반응이 참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진료실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은 자세한 설명을 듣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뭔 잔소리가 이렇게 많냐며 말도 끝나기 전에 딴청을 피우다 일어서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약을 먹기 싫어해 어떻게 해서든 약을 한 알이라도 줄어보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약이 많아야 치료가 된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더 좋은 약을 더 많이 달라고 한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옛날에 어디에서 지어 먹었던 약을 먹고 속이 확 풀어졌으니 더도 말고 그 때랑 똑같이 지어달라고 우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는 진료실에서 한 번에 환자가 요구하는 것을 파악할 수 없다. 엄살인지, 진짜 증상 호소인지도 헷갈린다. 좋은게 좋은 거라고 약을 더 달라는 사람은 더 주고, 덜 달라는 사람은 덜 주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처치를 하면 되는데 환자가 교과서대로 증상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고, 검사장비도 없고, 의사가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한 번에 맞추기는 어렵다. 처음 배치 되었을 때에 했던 이런 고민의 실마리를 요즘에는 찾은 것 같다.

같은 환자를 여러 번 만나니 초보 의사의 눈에도 환자가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환자 자체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한다. "저번에 속 불편한 것은 좋아지셨어요?" "네, 많이 좋아졌어요"까지 할 수 있는 환자를 만났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분들이 병원을 여러 번 다녔을 텐데 단골 의사가 없는 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분들이 보건소 의사와 친해지는 것도 좋지만, 10년 까지 지켜볼 수 있는, 오래간만에 와도 옛날보다 증세가 호전되었는지, 악화되었는지 알아봐 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친구 같은 의사가 동네에 한 분씩 있었으면 좋겠다.

박 지 훈
충남 보령시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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