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회의라고 해서 모였지만 이번처럼 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경우도 드물다. 여러 사람이 모여 머리를 짜내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답도 나오고 정답은 아니라도 임시방편의 대책이라도 나오게 마련이건만 이번은 아니다.

8월 초에 발효된 '응급환자에 관한 법률에 대한 대책회의'다. 응급실과 관련된 임상과와 보직자들이 모두 모였으니 그 수가 꽤 된다. '환자가 원하면 전문의가 진료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모인 것이다. 원래는 전공의 3년차 이상이 진료하는 것이었던 모양인데 전공의협의회에서 강력히 반발해 응급실진료에서 전공의는 빠졌다. 이제부터 응급진료는 전공의가 아닌 각 과 전문의가 해야 한다. 그런데 처벌이 만만치 않다. 불렀는데 오지 않으면 해당 전문의는 면허정지를, 병원은 2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외과과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외과는 전문의들마다 세부전공이 따로 있다. 현재도 전문의가 온콜(on-call)을 받고 있다. 전공의가 먼저 환자를 보고 응급수술이 필요하면 세부전공 전문의를 부른다. 따라서 새로운 법처럼 날짜별로 당직 전문의를 두는 것은 세부전문의 체제 하에서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응급환자에 대한 전공의교육은 어떻게 하고 그렇지 않아도 외과레지던트를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데 외과전문의가 되고서도 이런 고생을 한다면 누가 외과를 지원하겠냐고 했다. 펠로우(fellow)들의 업무가 가중될 텐데 겨우 있는 펠로우들도 나가겠다고 하면 어떡할 것이냐고 했다.

산부인과는 사정이 더 나빴다. 전공의나 펠로우도 없이 전문의 몇몇이서 근근이 과를 운영하고 있는데 응급실 당직을 서라고 하면 다음 날 외래와 정규수술은 누가 할 것이며 학기 중에 강의는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승진을 위한 논문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소아과였다. 밤에 응급실에 오는 환자의 20-30%가 소아과 응급환자다. 요새 엄마들이 아는 것이 많고 까다로워 전문의 진료를 원하면 결국 응급실에 매일 당직을 서야 한다. 소아과 전문의 수도 얼마 되지 않지만 소아과도 세부전공이 있어서 일반환자 진료는 오히려 전공의보다도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도 의료투쟁시 전공의 없이 환자를 보느라 황당했던 기억이 있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내과는 다를까. 내과도 분과가 되어 있고 분과에 속해 있는 전문의 수가 많지 않아 다른 과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비인후과나 안과 같이 전문의가 적은 과들은 아예 대책이 없다. 이비인후과도 귀를 전공하는 전문의와 코를 보는 전문의가 다르고, 그나마 전문의 수도 몇 안 되니 세울 대책이 있을 리 없다.

그 다음날 신문을 보니 국회에서 이 문제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고 한다. 모 국회의원의 발언이 실렸다. "그동안 응급환자에 대해 무관심하던 의사들이 면허정지와 벌금 때문에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을 이제라도 깨달았기를 바란다"는 준엄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의 기사도 있었다. "전문의가 1-2명인 과가 대부분인데 그 분들에게 매일 당직을 서게 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서 아무래도 응급실 없이 병원을 운영해야 할 것 같다"고.

김 형 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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