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서양 현대의학이 전해진지 100년이 넘었다.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고 글로벌화 되고 있지만 오랜 시간동안 내려온 문화적 정서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윤리관은 우리나라와 같은 동아시아의 유교적 사회에서 인정받고 수긍되기에는 참 힘든 상황인 것 같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윤리관은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양보를 미덕으로 본다. 개인적인 권리의 존중, 사익 추구의 보장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공공선을 위한 희생을 강조한다. 이런 유교적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주장은 받아들이기에 상당히 힘든 개념인 것이다.

근대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동아시아의 유교적 사회에서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까지 진단한 바 있다. 정당한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모습을 점잔하지 못하다고 가치 절하해 버린다. 정당한 자기주장을 하고 싶어도 유교적 정서라는 틀에 갇혀 자신의 표현을 감추고 속으로 갈등하고 억울해 한다. 남이 잘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배 아파하고 인정하기 싫어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상한 정서가 깔려있다.

문화적 정서에 기인한 윤리적 갈등이 의료현장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환자의 자율성 문제이다.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전 중에서도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는 환자의 자율성 보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환자 자신이 자신의 치료와 진단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자율성존중 원칙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진료현장에서 일상적인 검사나 기본적인 치료를 넘어선 특수한 진단검사나 치료를 임하기전에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얻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환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물어보게 되면 대부분이 “의사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하고 표현한다. 물론 이것을 암묵적 동의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닌지는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온정적 간섭주의(아버지가 자녀들을 돌보듯 환자에 대한 치료결정을 주도하는 행동)에서 동반자적 관계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지만 진료현장에서는 아직도 환자들이 온정적 간섭주의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중질환의 경우 더욱 이런 경향이 높은 것 같다. 의사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동양적 유교사상이 깔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본인의 의사표현을 자제하고,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자율성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유교적 복종주의 기전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환자들은 가족들의 눈을 많이 의식하게 된다. 자신의 권리보다 가족공동체의 합의를 중요시 하는 문화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민국 의료현장에서 문서형식으로 받고 있는 대부분의 동의서는 환자보다는 보호자들에 의해 작성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특히나 임종에 이른 환자분들에 대한 치료나 케어에 필요한 선택을 할 경우 이런 경향이 매우 높다.

윤리적 문화 충돌은 의사들의 수입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의사들은 돈을 벌면 비윤리적이라는 해괴한 정서가 대한민국 국민정서에 깔려 있음을 절감한다. 의료라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무에서 유가 창조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의사들의 수입에 대한 거부감의 밑바탕에는 개인의 사익을 경시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자칭 고고한 선비정신으로 통하는 유교사상이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문화적 혼돈 속에 환자들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의사들의 정당한 이익 추구가 무시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동양적 정서위에 서양의 윤리관이 접목하기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문화적 윤리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의사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으로 지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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