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강경주

● ● ●

목을 꺾으며
동백꽃 진다

동맥을 끊듯이 단번에
온몸으로 얼굴째
동백꽃이 진다

뭉텅 뭉텅
붉은 꽃그림자를 밟고 가는
숲 속 여기 저기
쌓인 것들은 다시 떨어지지 못한다
다시 날아가지 못한다

그 수많은 상처들이 한꺼번에 꽉
입다문 이유

바람이 없으면
향기도 없다

● ● ●


강경주: 1976년 부산대 의대 졸업. 강경주 산부인과 원장.

1989년 ‘현대시학’ 등단.

‘동백의 머리가 떨어지는’ 춘수락(椿首落)이다. 동백꽃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 하여 그 형상을 가리켜 춘수락이다. 거의 모든 꽃이 질 땐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데 동백꽃은 꽃봉오리 통째로 뚝뚝 떨어져 진다. 그 모습이 애처롭고 슬프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프랑스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 ‘동백꽃을 들고 있는 부인’ 또는 ‘동백아가씨’)를 오페라화한 베르디(Guiseppe Verdi)의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비올레타(Violetta)는 비극의 여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엔 대중가요 속의 ‘동백아가씨’가 있다.
동백은 눈 속에서 꽃을 피워내고 사철 잎이 푸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동백잎은 눈이 부시다. 그러나 동백꽃은 향기가 없다. 동물세계의 유각무치(有角無齒,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가 없다는 풀이로 한 사람이 모든 재주나 복을 다 지닐 수 없음)다. 그렇지만 향기가 아름다움의 전제라면 그 꽃은 향기가 날 때만 아름다울 뿐이다. 향기(香氣)는 없지만 동백꽃은 아름답다. 동백꽃은 ‘꽉’ 고개를 떨구고 그렇게 떨어져,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임을 향기 없는 침묵으로 짙붉게 말할 줄 알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