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사회가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의사에 대한 역할과 임무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의사들에게 요구되기도 하고, 어떤 역할들은 없어지기도 한다. 의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공적으로 사람의 생명이 연장되었다. 죽음에 대한 정의와 파생되는 문제들이 이슈로 떠올랐다. 2차 대전 이후 나치의 생체실험을 계기로 의학적 연구 윤리 문제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있다.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정의(Justice)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의사들도 의사로서 정의로운 역할을 수행할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의료영역에서 정의에 대한 윤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 모두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고, 작게는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단지 힘이 세거나 권력을 쥔 사람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발생될 수 있다.

우리는 복잡하고 애매한 의료윤리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한다. 우리 앞에 주어진 윤리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방법론이 궁금하다.

윤리학을 크게 이론윤리학과 응용윤리학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의사들에게 해당되는 의료윤리는 응용윤리에 속한다. 의료윤리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크게 상향식 접근방법과 하향식 접근방법이 있다. 지난 1998년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에 발생한 '김할머니 사건'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의료윤리에 대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 윤리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중 보라매 사건을 하향식 접근법과 상향식 접근방법으로 접근해보자. 먼저 하향적 접근법(top-down approach)은 연역주의적 모델로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논리학의 3단 논법과 유사하다. 어떤 윤리이론을 정해 놓고 그 이론을 여러 의료윤리문제에 적용시켜 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대전제>인간을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르다.<소전제> 안락사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 <결론>따라서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그르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이 접근법에 따를 경우, 보라매 병원 담당의사는 유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살인은 도덕적으로 그르다”라는 윤리원칙을 의료행위에 적용시켜 담당의사의 퇴원 허락이 사망의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보고 살인죄를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나라와 문화에 따른 의료관행의 특수성 내지 복잡성을 감안할 때 이런 하향적 접근법은 너무 엄격해서 의료행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향적 접근방법은 이처럼 정해진 원리를 각 문제에 적용시키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상향식 접근법(bottom-up approach)은 도덕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귀납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귀납주의적 접근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사례중심 접근법(casuistry)이다. 보라매 사건을 귀납적으로 해석해보자. 환자 보호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진료비로 인해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을 요구한다. 이런 환자 보호자의 요청을 거부할 권리가 의사에게 없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담당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의 윤리를 도출하는 이런 방법을 우리는 '상향적 접근법'이라 부른다.

보라매사건과 김 할머니 사건의 경우를 하향식 접근방법으로 접근하면 영원히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린다.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때에 상향식 접근방법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고, 하향식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이것을 잘 적용할 줄 알아야 의사가 윤리적인 의사가 될 수 있다. 윤리는 공부한 만큼 보이고 행동과 환경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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