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끓는 시간
김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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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덥히려면 당신이 먼저
뜨거워져야 한다
당신이 뜨거워지려면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따라 몹시도 서두르는 당신,
맹렬히 타오르며 이곳 저곳 나를 자극한다
당신은 후끈 달아오르면서도
얼굴만 조금 붉힌다
임계점에 이르면 내 피부에서는
소름이 돋는다
땀샘이 열리고 가느다랗게
앓는 소리를 낸다
날름거리는 당신의 혀가 파랗게 날을 세운다
이윽고 내가 뜨거워지면서
당신은 말을 잃는다
빠르고 화끈한. 더디지만 오래가는
여러 얼굴을 가진 당신, 당신의 에너지가
늘름하게 쳐들어와 나를 덥힌다
당신의 몸 곳곳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나의 파동들
방울이 점점 커지면서 내 눈이 등잔만큼 열린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 온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솟구쳐 오르고,
환희의 신음 소리가 달아오른다
아득히 천둥번개가 치고 우레 소리가 들린다
백팔번뇌가 끓어올라 우리들 사랑이
기화하는 동안
방 안에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하다
파도가 절정에 이르면 소리 없이 스러지듯이
어느 한 순간에는 우리 모두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한다
자신의 가슴에는 역사를 새기지 않는 물,
그래, 나는 텅 비어 있는 또 다른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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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완: 전남의대 및 동 대학원. 광주보훈병원 내과.
2009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끓는 일은 열을 동반한다. 열(熱), 열정, 열망, 정열, 정화(情火)…. 뜨거운 모든 것과 닿아 환희의 땀방울에 흠뻑 젖은 신음의 입 벌림, 거기의 뜨거운 입김과도 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