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지

송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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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半白의 산에
반백半百의 나이로
거미줄 하나 걸친 것 없는 숲에
진눈깨비 새치로 들다

검은 산길과 하얀 물길을 지워가는
잿빛 하늘의 나비떼들과
묵언으로 낙엽의 색깔과 무게를
응축하는 나이테들이 공명하는 적요

밤마다 휴대폰과 한 베개로 잠자다
구급차 소리에 놀라
빈 물지게같이 흔들리던 어깨
하얀 풍경 속으로 빨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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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헌: 충남의대 졸. 옥천 중앙의원.

1999 ‘시와 시학’ 등단.

산에 가는 일과 살아가는 일이 퍽 닮았다고 한다. 半白이란 이름의 산에 半百의 내가 있다. 중턱쯤 오르노라니 더러 비인지 눈인지 모르는 진눈깨비 내려 산이 희끗희끗해지듯, 진눈깨비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막연한 인연들이 머리 반쯤을 하얗게 세게 하고. 머리가 세는 일. 머리가 하얘지는 노화. 매사 허겁지겁 휴대폰에 끌려 다니느라 바짝 말라버린 어깨에 잔뜩 늘어 붙은 풍진(風塵). 나비 좇던 모든 색깔 온전히 탈색(脫色)하여 내려 놓는 낙엽의 가벼움은 하얀 꿈, 하얀 기억, 그리고 하얀 머리카락으로 산에 들어 검푸른 산 틈새에 온통 하얗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 흐르는 계곡에 닿아 이제야 비로소 목을 축인다.
먼 어느 날, 쉰 살쯤에 해당하는 내 삶의 허리를 썽둥 베어보면 자아를 찾아 덧없이 젓던 날갯짓과 바람에 쓸려가던 낙엽의 가벼운 무게로 가득 찬 쓸쓸하고 고요한 나이테를 대할 것이다. 내려오기 위해서 오늘도 오르는 산 중턱 어디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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