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간 시행된 의사 인턴제가 조만간 폐지될 것 같다. 최근 들어 복지부와 의학회가 인턴제 폐지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관련 협의기구를 세우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고 있는 의학드라마에도 인턴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꾸려지는데 선배들의 허락 없이 의료행위를 해서 혼나고 전화 안 받고 연락 두절된 상태로 외출했다 혼나는 모습을 보며 문득 그 드라마를 통해 국민들이 인식하는 인턴의 위치가 ‘현실과 크게 다르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턴은 감독하는 의사 없이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종의 견습생이다. 즉 보다 전문화된 의료에 진입하기 전 의대과정 중에 교과서로만 접했던 지식을 근거로 다양한 과목의 세분화된 의료행위를 미리 체험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인턴은 ‘값싼 고급인력’으로 전락해왔다. 서류를 복사하거나, 학회장 의자를 나르거나, 매일 다른 메뉴로 야식을 시켜야하는 등 각 과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의사였다. 어찌 보면 도제식 교육의 폐해인지도 모르겠다.

산 속 어느 대가(大家)에게 무술을 배우려면 마당을 3년간 쓸어야하고, 주먹질 한번 배우고 나면 또 3년 동안 밥을 해야 하는 영화 속 모습처럼…….

이렇듯 현재의 인턴제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몇 해 전부터 복지부가 용역을 맡겨 제도검토를 시행했고 일단은 2014년부터 폐지한다는 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의사의 수련과정도 교육의 일환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제도에서의 인턴교육은 각 병원이 책임지며 병원은 복지부 소관이다.(의대는 교과부에서 관리한다) 이러한 관리부서의 이원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책마련이 용이치 않아 보인다.

일단 인턴제를 폐지하면 실질적으로 본과 4학년이 현재의 인턴역할을 하게 된다고 봤을 때, 의대생 실습을 그만큼 내실화해야 하는데 재원마련이 걱정이다. 실습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실, 실습실 등의 하드웨어 확충에도 막대한 비용이 예상된다.

이 모든 걸 병원이 떠안기에는 부담이다. 또한 학생교육, 외래, 수술, 연구 등 이미 포화상태인 교수업무를 감안할 때 실습학생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교수인원의 확충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레지던트 지원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은 인턴 과정 중에 눈도장을 찍는 일종의 ‘인간성’ 점수가 선발에 적지 않은 요인이 되고, 일부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라 ‘로얄’ 또는 ‘성골’이라고 불리는 인원이 뜻하지 않게 선발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대졸업 후 곧바로 레지던트를 시작한다면 이러한 변수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가장 객관적인 점수는 학점과 국시가 될 텐데 그렇다면 대학입시처럼 국시가 마치 수능이 되고 학점이 고등학교 성적처럼 여겨지지는 않을까.

최근 인턴제 폐지에 따라 지방의대생들의 서울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 아니냐는 학생들의 불만이 제기되었는데 이렇게 점수위주의 선발이 된다면 성적에 따라 오히려 서울진입이 지금보다 더 용이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자칫 잘못하다간 모교병원에도 남지 못하는 불상사가 초래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서울을 목표로 하는 학생의 경우 본과 내내 국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현재보다 더 강화될 실습과정을 예상해보면 국시에 도움 안 되는 실습활동은 과감히 포기해버리는 모순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실 이왕 인턴제를 폐지하는 김에 기회가 된다면 의사수련과정 전반에 걸친 심도 깊은 논의가 정부와 의학계간에 오고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인턴-레지던트-펠로우’로 이어지는 수련과정의 핵심은 레지던트라고 생각한다.

레지던트들이 실질적인 주치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가급적 전체 수련병원들이 통일된 가이드라인 아래 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그것의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펠로우는 업무 부담을 덜고 연구와 논문에 좀 더 시간투자를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러한 의학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에 대해 의협과 병협, 의학회, 학생, 학장단 모두가 참여하는 협의기구가 활성화되어야하고, 시간에 쫓기지 말고 끊임없는 토의를 거쳤으면 한다. 안되면 2014년 폐지를 뒤로 미루고서라도 보다 완성된 제도를 도입했으면 한다. 또 다음 55년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김 기 현
강진군보건소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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