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본부에서 119로 걸려온 전화에 대해 응급의료상담을 하면서 가끔 갈등을 느낀다. 내 개인적으로는 귀찮음과 원칙 사이에서의 갈등이고 크게 보면 대의적 차원에서의 대국민 서비스와 국민 개개인에 대한 서비스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표적인 예가 소아의 이송요청이다. 내가 받는 직접 의료지도, 즉 신고자 개인에 대한 의료지도 요청 전화 중 가장 많은 경우가 열성경련 사례다. 아이가 열이나고 눈이 돌아가고 숨을 쉬지 않는다며 보호자가 반 실성한 상태로 내게 연결된다.

대개의 경우 무조건 괜찮을 거라고 강하게 이야기한 후 30초만 기다려보자며 히스토리 토킹(history taking)을 하다가 보면 경련은 끝나고 보호자도 좀 진정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나는 항상 갈등한다.

구급차 출동을 취소시킬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전혀 응급하지 않은 상황에, 보호자가 직접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송을 해야 하는가. 결국 결론은 이송이다. 일단 내가 설득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다.

어느정도 안정되어있는 상태라고 해도 보호자는 여전히 흥분되어있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 다른 응급환자를 위해 양보해 달라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육두문자가 터져나오기 십상이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특성상 그러한 과정에서 민원제기의 소지가 많아 소방본부에서도 그냥 이송하게 두라고 하는 편이다.

무리한 장거리 이송요구도 참 난감하다. 얼마 전에는 손가락 절단 환자가 있었다. 공장에서 손가락 절단이 되었다는데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나에게 직접의료지도 요청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고 구급대원이 나에게 지도요청을 한 것이었다. 환자가 광명으로 이송을 요청하는데 어찌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협력병원이 경기도 광명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달라는 것이다. 광명까지 왕복하는데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세시간은 걸릴 것이고 게다가 해당 구급차가 속한 지역은 인구가 많아서 구급요청이 자주 있는 지역이라 확실히 거부해야 하는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접 환자에게 근처에도 수지접합 가능한 병원이 있다, 아무리 6시간 내에 접합하면 괜찮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빨리 접합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 당신이 이렇게 요구를 해서 들어주면 그 사이에 심정지나 뇌졸중 등의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 등등 갖은 이유를 들었지만 환자는 막무가내였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그래도 이송해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이송시킬 수 밖에 없었다. 각 소방 안전센터당 구급차는 대개 한대씩밖에 없는데 응급하지 않은 한사람의 웰빙을 위하여 잠재적인 응급환자의 희생을 감수하고 말았다.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왜곡되어 서비스가 요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응대를 의미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공공서비스 또한 그 개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제공자와 수혜자보다 비상식적인 요구와 행동이 더 존중받게 되면 공공서비스는 일부 비합리적인 수요자에 의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권위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합리와 원칙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한사람의 만족도보다 우리 모두의 만족도가 높아질 거라는 생각이다.  

 

▲ 한종수
충남 소방안전본부 공보의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