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1

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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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에는 길이 생겨났다.
머언 산마루의 길 모양
한 번, 두 번……
이런 발자국만으로 하얀 길이 되었다.
누구를 찾아 나섰는지
매번 잽싼 걸음으로 꿈길을 갔다.
누구였을지 모를 사람을.
다만 먼 산마루턱의 꽃대궐이 있었다.
갈 때마다 머리가 기인 佳人은 있었다.
허지만 누구일런지 나도 모른다.
어떻게 그 먼 길을
곤하지도 않게 단숨에 왔다 갔는지 모른다.
꿈길은 가는 길도 신나고
오는 길도 흥겨워하더라.
언제부터 생긴 길인진 몰라도
너와 나만 알고 드나들기로 한 길.
아름다운 佳人아
나는 네가 누군지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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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엽: 1933 서울 생, 1994년 4월 작고. 가톨릭의대. 가톨릭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역임.

‘꿈꿈 그리고 내마음’(1977), ‘솟대여 날아라’(1984).

눈에 그려지는 소망을 비전이라 하자. 아름답지 않은 소망이 어디 있는가? 바로 가인(佳人)이다. 비전은 욕심이 아니라 방향이다. 비전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비전은 그 길로 난 방향이다. 앞으로 난 길은 앞을 봐야 보이고 뒤로 난 길은 뒤로 돌아서야 선명하다. 욕심이나 목표는 달성되고 나면 허무하다. 욕심이나 목표와 달리 비전은 만나기만 해도 혹은 설령 내 육신 낡고 허물어져 못 만난다 하더라도 만나기 위해 나섰던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찍힌 그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꿈꾸듯 아름답다. 가인을 만나러 나서며 내가 꿈꾸는 가인이 되어가는 둘만이 아는 조화(造化)는 산마루턱에도 어둔 거리에도 아니 진료실에도 꽃대궐을 짓는다.
욕심이 과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죄다 신나고 흥겹고 언제 해냈는지 시간도 곤하지 않게 빨리 간다. 진료실 안에 머리가 기인 아름다운 佳人 한 사람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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