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개발도상국에서의 개발이라고 하면 서구의 산업화를 이식받는 과정을 떠올린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러했듯이 아프리카의 국가들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산업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었기에 개발은 경제구조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양식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충돌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2010년 4월 내가 말라위의 한국 선교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환자들을 보는데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사람들의 몸에 잔상처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흉부나 복부, 사지 가릴 것 없이 어떤 패턴이 있다기보다 일자형의 잔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의문은 아주 쉽게 풀렸다. 어느날 응급실에 한가로이 앉아 아기를 업고 있던 어머니와 간호사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현지어로 대화를 하던 간호사들이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이것 좀 보라면서 아기의 정수리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대천문 부위에 작은 흉터가 수없이 나 있었다. 간호사들이 말하기를 신생아들의 열려있는 대천문에서 박동이 느껴지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동네에 있는 Witch doctor(흔히 동네의 전통 치료사를 이렇게 부른다.)에게 문의하자 그가 나쁜 것을 빼내기 위해 상처를 냈던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 환자들에게서 발견했던 잔 상처들이 다 그러한 치료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걱정스러움이었다. 상처를 통한 감염 위험, 동네 치료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한 적절한 치료의 지연 등이 아니라 간호사들의 그 상처와 상처를 낸 어머니에 대한 태도였다. 그들은 그 상처를 낸 치료사와 그 치료사를 찾아간 그 어머니를 비웃는 것 같았다. 대상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내려다보는 듯한 비웃음. 옆에서 보기에 너무 불편했고 그 불편함이 걱정스러움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고유의 것을 전통으로 취급하지 않고 미신으로 취급하여 안타깝게 사라져간 문화적 요소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네들의 비웃음을 보며 말라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소위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수천년간 이어져왔을 그들 나름의 지혜가 있다. 그것이 합리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틀리지만은 않을 뿐더러 – 실제로 말라위 사람들이 달여먹는 차는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 – 그들 나름의 것을 서구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폭력이다.

최근 국제 개발 분야에서는 수혜자의 관점에서, 수혜자 주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있다. 공여자는 수혜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수혜자도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진행해야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 아직은 수혜자의 문화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는 수혜자측 사업파트너에 대한 존중으로 보인다.

백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이른바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그리 큰 성과를 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서구의 폭력적인 지원이 국가의 기반을 해치고 문화를 말살하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국제개발에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닐까? 어떻게 하면 투자를 효과적으로 할지, 어떻게 하면 지표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기보다는 현재 이루어지는 개발을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극단적인 방안이나 현재의 지표를 모두 버리고 재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의문을 던져본다. 

 

한 종 수
충남소방안전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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