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의약분업부터 최근 언급되는 포괄수가제의 확대 적용에 이르기까지 의료계를 둘러싼 정책의 변화가 많았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의사 집단은 보건복지부가 과소 평가하고 있는 비용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불합리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근거로 들어 정책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의 위협이 된다는 논지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 표출 방식은 의료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의사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옳은 방식이다. 하지만 의료계에 몸 담은지 얼마되지 않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 축은 의사-정부-국민이라 생각한다. 이 축이 균형을 이루어 양질의 국민 의료를 이루어가야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아쉽게도 이 세 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중 정부에게 과도한 권한이 주어져있고, 의료 행위를 담당하는 전문가로서의 의사의 발언권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제한된 건강보험재정으로 최대 다수의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공급해야 하는 정부의 기본 전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출증가 억제’라는 명분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의사 집단이 우려하는 ‘국민 의료의 질 저하’라는 사실을 정부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 집단은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들의 허점과 현 건강보험체계의 한계를 의료 시스템의 한 축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잘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의사협회가 의료 정책에 대해서 불합리한 현 상황과 정책 변화로 인해 닥쳐올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지만, 의사 집단이 이야기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의료 행위 자체의 특성이 고도의 전문성인지라 국민들은 의사들이 말하는 의료 체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의사 집단의 이미지’라는 프레임으로 현 상황을 해석하게 된다. 국민들은 의사 개개인에 대해서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책 결정과정에서 의사집단이 목소리를 낼 때는 의사집단을 백의의 천사라는 이미지보다는 부자, 배부른 자와 같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현재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책정되어 있는 수가에 대해 의사 집단은 ‘원가도 안 되는 수가로 인하여 의료 행위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의사 집단이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할 때 국민들은 ‘부자, 배고프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라는 프레임으로 ‘원가도 안 되는 수가’라는 사실 자체보다는 의사 집단의 도덕성에 관심을 두어 이야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의사 집단이 옳은 이야기를 함에도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 프레임으로 현 정책들의 허점, 현 건강보험체계의 한계를 말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의료 정책으로 인해 낮은 가격으로 양질의 의료 행위를 공급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정책은 의료 행위를 공급하는 의사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이다. 현 정책의 개선 없이는 의료 공급행위가 왜곡되어 양질의 의료를 보장받기 힘들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본다.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언뜻 보아서는 합리적인, 강한 담론을 극복하고 양질의 국민 의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의료를 구성하는 두 축인 의사와 국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협력을 위해서는 의사에 대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 극복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이러한 프레임의 극복은 의사 집단이 국민들의 언어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이루어 진다. 의사 집단의 노력으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때 현재 의료계가 처해있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준우

의대협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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