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의사협회 새 집행부가 들어섰다. 이번 집행부 탄생의 바탕에는 의사회원들의 권익을 향상 시켜주기를 바라는 개원의들의 열망이 현 집행부를 낳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집행부는 “회원의 행복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하자‘라는 표어를 내 걸었다. 의사의 권익을 찾아주며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의사들 모두 소원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잘 살고 국민들의 건강이 보장되는 사회가 오기는 하는 것일까? 의사들이 잘 먹고 잘사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단지 한때 공부를 잘 해서 의과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이 젊은 의사들의 모습이다. 고생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댓가가 변변치 않음을 알기 시작한 이들의 마음에는 분노만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리 예측 된 일들이었다. 무리한 의과대학 증설과 급격한 의사의 증가, 한정된 의료보험재정, 정치인들의 생색내기 선심정책 등으로 대한민국 의료는 심하게 왜곡되었다. 어느 곳에서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지 망막할 뿐이다.

한국의사들은 미국의사들의 명예와 부와 존경받는 지위를 무척이나 부러워하고 있다. 한방과 민간요법, 현대의학이 혼재되어 극도로 혼란스러운 우리나라 의료현실은 초창기 미국 의료현실과 상당히 흡사하다. 미국 의사들은 어떻게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면서 그 들의 위치를 지키며 존경과 부를 얻을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폴 스타(Paul Starr)가 쓴 미국의료의 사회사(The Social Transformation of American Medicine)라는 책이 번역 발간되었다. 미국의사들이 직업전문성(professionalism)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생생한 역사를 이해 할 수 있는 책이다. 미국의사협회의 탄생과 의과대학의 탄생, 대체의학의 통합, 의사협회의 세력화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8년전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받은 감동과 떠 오른 아이디어 등은 의료문제를 바라보는 필자의 시야를 확 넓혀 주었다. 미국의사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공익을 내세우는 정책을 주도 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된 홍보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이가 이런 표현을 했다.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찾아 북미로 갔다. 이들은 나라를 이루고 부를 누리게 되었지만,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은 노골적으로 남미로 금을 캐러갔다. 결국 이들은 금도 못 얻고 욕만 먹는 탐욕스러운 지배자였다는 불명예만 얻게 되었다." 이 표현을 통해 미국의사들의 모습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은 의사협회가 취해야할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충고했었다. "의사협회가 의사회원들의 권익을 챙기겠다면 상당히 이기적으로 보이며, 결국에는 자기의 권익을 지키지 못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공익을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권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권익을 찾는 현명한 방법이다. 집단의 이익만 챙기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권익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미국의사들의 사회화과정과 이종욱 총장의 충고를 통해 의사협회가 취할 자세를 그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의사회원들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적고 더디더라도 표면적으로는 공익을 내세우는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 같은 정책이라도 국민홍보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포장을 잘 해야 한다. 의사들의 주장이 의사들의 권익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을 알더라도 공익을 위해서는 따라주어야 한다고 공감하는 홍보 전략을 펼쳐가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자율정화를 통한 자정의 모습을 보며 주고, 전문가로서 국민의 건강에 관한 정책을 입안 할 것을 국회와 정부에 주장해야 한다, 의사단체는 의사들의 권익 단체이지만 공익을 내세워야만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 길만이 의사들이 살 길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