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일반적으로 주어진 상황이 애매모호하고 불확실성이 높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쉽게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즉 사회적 증거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높다(Tesser , campbell & Mickler).

최근 해외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민을 가서 갖게 되는 직업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처음 이민자로 공항에 내렸을 때 이들을 픽업하러 오는 사람의 직업을 따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낯선 이민자로서 어리둥절하고 불확실한 시간에 배웅 나온 분의 삶은 새로운 이민자에게 멋진 롤 모델(role-model)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의대생들이나 의사 초년생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의과대학 시절 임상실습을 하면서 선배의사들에게 받는 인상은 앞으로 내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전공의 수련기간 중 선배의사들과 의과대학 교수의 행동과 매너, 심지어 억양까지도 그대로 본받는다. 교수들의 말과 행동은 절대 진리라고 맹신하고 충성한다.

설사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배우고 하고 있는데 하면서 윤리적·도덕적·직업전문성의 민감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를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라고 한다. 어떤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 생각은 더욱 옳은 생각이 된다는 법칙이다. 잘못된 사실, 진리가 아닌 사실도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면 그 사실의 정오(正誤)를 떠나 그냥 옳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의과대학 교수들 중에는 그들의 행동과 언행이 신문지상에 올려 졌을 때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로 부끄러워 할 일인데도 도덕적·윤리적 민감도가 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전문가는 의사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자율성, 윤리를 갖추어야만 전문가로서 존경과 대우를 받게 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수술을 앞두고 환자들에게 은근히 촌지를 바라는 교수 분들이 있었다. 심하게는 전공의들에게 저 분은 병원에 입만 하나 달랑 달고 오는 분이라는 악평을 받는 분도 있었다.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욕설과 폭력을 가하는 교수들이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개원의로부터 진료의뢰가 되어 왔을 때 왜 이런 것도 모르고 환자를 보냐는 말을 환자 앞에서 함부로 내뱉는 분도 있다. 의사 외의 간호사, 의료기사들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판단의 말을 함부로 하는 분들도 있다. 자신의 실적을 위해 고가 영상진단이나 검사를 마구 해대는 분들도 있다. 회진을 돌 때 환자 앞에서 전공의를 무참하게 혼을 내는 것이 교수로서 할 수 있는 권위의 상징으로 알고 즐기는 분도 있다.

인격적인 모욕감을 받았지만 본인을 가르치는 분이라는 관계 때문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감내해야만 한다, 이 분들 모두 의사와 동료 의사와의 관계,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같은 다른 의료인과의 관계에 실패한 분들이다. 전혀 후배 의사들이나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롤 모델이 될수 없는 분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악습이 되물림 된다는 사실이다. 술주정을 하며 어머니를 학대하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결혼 후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명 잘못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롤 모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반면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과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배우고 자란 아이들은 이웃들에게 넉넉하고 성숙한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고 한다. 환자나 동료의사, 동료 직원들을 대할 때 보여주는 교수들의 깔끔하고 세련된 매너와 언어는 후배의사들의 교과서이자 롤 모델이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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