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어린 시절 ‘도깨비 방망이’라는 동화를 재미있게 읽고 들어왔다. 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이 나오고, 집 나와라 뚝딱하면 집이 만들어진다. 도깨비 방망이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들의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 재미난 이야기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이 도깨비 방망이라는 의미가 나쁜 의미로 사용될 때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어떤 우월한 위치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식을 벗어나 억지로 무리한 요구를 강요할 때 항변의 도구로 사용된다. 세상 무역규모 10위라는 경제 부국인 대한민국에 아직도 상식에 벗어난 행정을 일삼는 정부부처가 있다. 시행규칙을 무슨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시행 공포되어 8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일명 액자 의료법 시행령과 중환자실 운영 200병상의 병원에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 설치 의무화 시행령 입법 예고가 대표적 사례이다.

일명 액자 의료법은 오는 8월부터 모든 의료기관의 접수창구와 응급실에서 시행된다. △진료 받을 권리 △알권리 및 자기결정권 △비밀 보장권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 등 환자의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일정 크기 이상의 액자 또는 전광판을 비치토록 하고, 위반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5월 15일 입법예고했다.

내용은 좋으나 왜 이런 일을 의사협회에 맡겨서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지 굳이 정부가 나서서 하는지 모를 일이다. 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는 자녀에게 공부 좀 하라고 말하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 싹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동안 빈 공간으로 비어 있던 부분에 대해 의사들 스스로가 환자의 자율성 보장과 권리 증진을 위해 애쓰던 차에 찬 물을 부어 버렸다. 게다가 참여단체와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할 위치에 있는 의료분쟁조정중재위원회 관련 문구를 넣도록 했다. 정말 속 보이는 전술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시행령의 시행을 앞두고 분명히 입법예고가 있었을 텐데 당시 의사협회 집행부는 도대체 무슨 의견을 제시 했는지 궁금하다. 이런 선언적 문구는 전문가 단체가 스스로 해야 모양도 나고 지속성이 있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막무가내로 전문가 집단을 무시하는 시행령을 만들었는지 한심할 정도다.
다음으로는 병원감염관리를 위한 시행령 입법예고이다. 병원감염 관리 강화를 위해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을 일정규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하고 전담인력을 배치토록 개정 예고했다. 시행규칙 개정안에서는 설치대상 의료기관을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200병상 이상 병원으로 정했다.

병을 고치려고 병원에 갔다가 병원에 잔존하는 병원균에 2차 감염되는 병원감염은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고통과 생명의 위협을 주고 막대한 재정적 손해를 입히고 있다. 이제라도 이런 것에 제도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돈 안 들고 공짜로 되는 일이 없다. 병원관계자들은 이런 제도의 도입에 찬성을 하지만 시행에 따르는 인력보강과 교육, 장비 구비 등을 위해 별도의 수가를 산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입원관리료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름만 있지 실제로 도움이 안 되는 낮은 관리료를 정해 놓고 감나라 배나라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고 있다. 어떤 필요에 의해 정책이나 법이 만들어 져야 한다고 판단이 된다면 먼저 그 정책이 시행되는데 참여할 관계단체의 협조를 먼저 구하고 정부가 할 일과 전문가 단체가 할 일을 잘 구별해서 시행해야 한다. 또한 정책 시행은 필요한 재원을 만들어 놓은 후 일을 추진하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다. 시행령만 만들면 다 될 것이라고 믿는 비상식이 상식을 몰아 내고있다. 도깨비 방망이가 통하는 시대에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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