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세계의사회의 환자권리선언에서는 “특정 치료에 있어서 공급이 제한되어 환자를 선택하여 시술할 수밖에 없을 때에, 선택의 기준은 의학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공정한 치료의 기회가 주어지도록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에서 의술의 발전으로 인해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의료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의료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수요를 따라 갈수 없기 때문에 정의로운 배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의료자원을 할당할 때에 거시적 단계에서 국가가 계획을 세우고 배분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배분을 결정하는 부분의 80%를 의사들의 결정에 의해 정해진다. 고전적 의료윤리 개념에서는 강한 온정적 간섭주의를 바탕으로 의사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의 이익만을 최선의 것으로 간주하고 치료하고 의료자원을 사용하였다. 남이 돌보는 환자는 그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 자신이 의료자원을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환자의 결정권을 존중해 주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가 온정적 간섭주의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환자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파트너십 관계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정의롭게 사용할지가 의료윤리의 최대 관심분야가 되었다.

현대 의사들은 의료자원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져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각 나라의 문화와 자원, 철학적 기초에 따라 의료자원의 배분을 다양한 접근법으로 배분하고 있다.

먼저 자유주의적 접근법에서는 의료자원은 시장원리에 의해 분배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환자의 능력과 지불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미국과 같은 나라가 선호하는 접근법이다.

공리주의적 접근법은 모두의 이익이 최대화(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라는 원칙에 따라 자원이 분배되어 한다고 말한다. 많은 Medical planner들이 지지하는 접근법이다.

평등주의적 접근법에서는 자원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가 대표적이다.

보상주의적 접근법에서는 자원은 역사적 약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분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네 가지 접근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에서 두 가지 이상의 개념이 공존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의사들은 점차 자유주의적 접근법을 선호하던 전통적 의료윤리에서 조금 더 자신들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개념 쪽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즉 자유주의적 접근법에서 나머지 세 접근법(공리주의, 평등주의, 보상주의)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들은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접근법을 선호하지만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단일 보험자에 의해 주도되면서 공리주의와 평등주의, 보상주의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영리법인 주장과 무상의료 주장들이 혼재된 상황이다. 정의로운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인 것 같다.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배분과 함께 의사들의 역할이 필요한 곳이 있다. 바로 의료자원의 확충 분야다. 의사로서 국가를 향해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자원을 확보하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의사들의 삶은 환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존재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지켜줄 때 환자가 의사를 지켜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의사들은 재정중립이라는 요상한 틀을 깨야한다. 정의로운 배분 전에 배분할 파이를 먼저 확보해야한다.

금년에 6명의 의사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들의 입을 통해 환자를 위한 의료자원 확보 주장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재정중립의 틀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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