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넓고 방대하다. 그래서 전문과를 두어 세부영역으로 나누어 진료한다. 그런데 이렇게 전문과목을 나누다 보면 과와 과 사이가 불분명하여 어떤 질환은 두 과가 같이 보게 되기도 한다. 소위 ‘허리디스크’라 불리는 병이 그렇다.

이 애매한 경계선에서 전문의들끼리 영역다툼이 생기는 일이 꽤 있는데, 이중 정신과와 신경과의 경계에서 일어난 다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SSRI는 우울증 질환에서 주로 쓰이는 약이다. 우울증은 정신질환이므로 정신과가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신경계 질환이 동반된 우울증이다. 신경계 질환이 동반된 우울증은 신경과에서 보아야 하는가? 정신과에서 보아야 하는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지를 생각해보자. 우울증의 원인이 신경계 질환이었음이 확실하다면 이 경우에는 신경과에서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우울증의 원인이 단순히 신경계 질환이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여 발생한 것이라면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 그런데 이 주장들은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원래 병이란 것이 딱히 하나의 요인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많고, 각 요인들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통계적으로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결국 이렇게 객관적으로 답이 없는 경우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결정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필자는 환자의 편의를 고려해 정신과의사와 신경과 의사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의학적으로 판가름 나기 쉽지 않으므로 다른 요인들을 생각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신경과와 정신과가 처한 입장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초점을 의학적 지식의 근거성에 맞추는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으므로 소모적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상호 합리적이고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고려할 수 있을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편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경과 질환으로 신경과를 다니는 환자가 정신질환이 병발했을 경우 수개월 이내의 단기적인 치료는 신경과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면 환자가 편하다.

신경과에서 정신질환을 다루는 것이 전문과를 나누는 취지에 맞지 않고 의료 질도 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 몇 개월에 한 번씩 필히 정신과의 협진을 받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정신과가 가진 의료의 영역이 신경과가 가진 의료의 영역보다 넓다면 정신과가 조금 양보해도 좋지 않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니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신경과와 정신과의 선택을 맡기는 것도 좋아 보인다. 환자 및 보호자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배려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SSRI 논쟁은 과학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다. 객관의 영역이 아닌 주관의 영역이다.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하고 진짜 토론을 해보자.

박제선
제주 조천보건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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