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후 의료계는 정치세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의사들의 정치세력화’라는 화두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 회장 선거 때마다 나오는 구호이고, 총선과 대선 때면 반드시 나타나는 이슈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화된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진정한 의미의 정치세력화를 알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에게 정치 후원금 내고, 의사출신 국회의원을 만들어서 가급적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무조건 의료계의 편을 들어주는 세력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사실 너무도 우습고 순진한 생각이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국회의원이고, 또 그래야만 생명력이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마저 망각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많다면 의료를 잘 몰라서 범하기 쉬운 정치인들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치과 의사 출신의 변호사 출신인 전 국회의원의 말을 빌면 의사들이 의무기록을 수정하면 처벌을 받는 조항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올라 왔는데 별 문제없이 통과되려던 그 법을 그 분이 나서서 딱 한 문구를 삽입했는데 바로 “고의로”라는 문구였다고 한다. 의무기록을 고의로 수정하는 것과 그냥 수정하는 것의 차이를 아는 의사출신 국회의원의 중요성을 보여준 실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국민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리할 수 있는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

바로 또 하나의 예로서 말할 수 있는데 바로 리베이트 쌍벌제도가 그렇다. 의사라면 리베이트 쌍벌제도가 법률적으로 이런저런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의사출신 국회의원 단 한명의 저항 없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하고 말았다. 이런 연유로 당시 의사출신 국회의원들은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그들이 국민의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들은 의사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친정을 위해 목을 내걸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직전의 총선에서 여의사 한 분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의료계는 마치 하나라도 더 국회로 밀어 넣으면 그들이 의료계를 위해 국회에서 암약할 것을 암시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그리고 의료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선한 의사출신 전 국회의원에게는 야유를 보내는 천박함을 보였다.

의료계를 위한 활동을 하러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없다. 그런 활동이 정의일 리도 없다. 아쉽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의료계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 출신답게 소신 있는 의정 활동을 할 것을 당부하는 것뿐이라고 본다.

박종훈
고대의대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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