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업인에게는 은퇴가 있다. 격렬한 육체적 활동이 필수적인 운동선수들에게는 아무리 건강해도 대개 30대 중후반이 은퇴하는 시기다. 대개의 선수들은 지도자의 길을 밟아 60대까지 일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박지성이 있는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도 70객이고, 우리나라에도 60이 훨씬 넘은 야구의 신 감독들이 있다.

의사들의 경우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통 65~70세를 은퇴하는 연령으로 여긴다. 대 학교수들이나 공직자 출신들은 정년퇴임을 은퇴로 삼아, 의업을 영영 떠나는 분들도 많지만 정년이 없는 종합병원에서 연구나 교육에 대한 오히려 더 왕성한 진료활동에 종사하는 분들도 많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65세까지만 보험의로 계약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국가의 의료보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진료활동을 한다고 한다. 물론 환자들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진료비를 전액 직접 또는 개인이 가입한 사보험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제일 큰 인생의 덕목으로 여겨왔다. 하기야 가난한 자원 빈국에서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근대 산업과 과학기술이 향상되면서 사람이 직접 일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일부 서비스업종을 제외하면 자동화, 기계화가 빠른 속도로 근로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니, 앞으로 은퇴나 퇴직연령은 더 빨라질 것이다.

의사들 역시 과거에는 진료시간 제한도 없이 환자를 돌보는 게 원칙처럼 여겨져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왕진도 가야하고, 그야말로 인술(仁術)이란 이름 아래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했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90대 개원의들이 있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100세 넘은 의사가 아직도 환자를 돌본다는 기사를 읽었다.

동네의원으로 평생을 살았건, 공직자나 교수로 정년퇴임을 했건, 역시 아픈 환자들과 보낸 세월은 의사들의 풍요로운 은퇴 후 생활로 이어지지 않는다. 무릇 이 세상의 많은 직업 중에서 의사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과 건강과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은 없다.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이 내가 만든 구두를 사간 사람에 대해 오래 걱정하는 일은 없고, 양복 재단사가 옷 맞춰간 고객 걱정하는 일도 없지만, 의사들은 평생을 환자 때문에 고통 받는다. 나 아니면 고치지 못했을 것이라거나 내 덕에 생명을 건진 환자들 몇 명쯤은 모든 의사가 가진 위안거리다. 그러나 “내 수명을 단축해서라도 저 환자 살려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안 해본 의사는 없을 것이다.

몇 날에 은퇴하든 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히포크라테스 후예로서의 과거는 잊고 사는 은퇴 후 삶을 즐기는 의사들을 많이 본다. 사진·미술·여행 등 때론 도자기 반죽으로 무아지경에 이르는 삶은 상지하(上之下)의 은퇴 후의 인생이라고 해버리면 지나친 평가인지 모른다.

하지만 벽 오지의 의료기관이나 요양병원 등에서 풀타임은 아니지만, 인술의 끈을 놓지 않는 의사들이 상지중(上之中)이고, 무료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와 함께 또는 단독으로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의료개선을 위해 일하는 의사들의 여생이 상지상(上之上)이라고 주장하려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평생을 남을 위한 삶을 충실히 일삼으니 쪽빛 바다 위를 달리는 크루즈 여행이나 온 세상 풍물을 즐기는 발걸음이 절대로 사치스럽지는 않다.

6·25전쟁 때는 우리나라에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내주었다는 에티오피아의 ‘Korea Hospital’(현지 명성병원 지칭)에서 만난 마취과와 외과를 전공한 은퇴한 두 분 후배의사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새삼 떠오른다. (한 분은 고등학교 후배고, 한 분은 해군군의관 후배라고 자기들도 객지이면서, 내게 저녁까지 대접해주었다.)

한광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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