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주의가 우울증 양산한다

“그럼 그렇지”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내 입에서 터져나온 독백이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저 내 마음에 든다며 서점에서 집어온 것이 모 인터넷 서점이 선정한 2011년 올해의 책이 될 줄은.

책의 서두는 2000년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던 저자(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맹신교도들처럼 한자리에 모여 ‘암은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축복’이라며 한목소리를 내는 어느 환우모임에 질겁한 것이 그녀가 펜을 든 시발점이었다.

긍정적인 태도라면 그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추앙하는 당시 분위기 또한 평소 저임금 노동자 계층을 항변해왔던 그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지 모른다.
육체적 질병, 경제적 빈곤, 스펙 위주의 암울한 고용현장에서 우리 중 일부는 시스템을 변화하려는 노력보다는 각자의 재능과 노력부족을 먼저 탓하며 손가락질한다. 삶에 불행이 찾아오면 모든 것이 내가 못나서, 내가 긍정적으로 살지 못해서 생겼다고 믿는다.
이처럼 긍정주의가 도리어 우울증의 전형적인 사고(思考)를 양산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뇌는 본능과 욕구 그리고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특정 논리가 우리의 욕구와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됐다.

긍정주의는 집단이란 큰 기계가 돌아가기 위한 그럴듯한 윤활유가 되어준다. 인간미를 묵살한 채 집단은 그저 개인에게 기계적으로 순종하기만 원한다.
게다가 살기 힘든 사회환경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게 만든다.

이런 위험한 생각의 프레임이 지배하는 한, 그 집단의 정서적 건강은 절대 보장할 수 없다.

저자가 <시크릿>류의 사탕발림용 자기 계발서적을 비난했듯 나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늘 말하며 다닌다.

정신과 의사이자 자기 심리학의 창시자인 Dr. Heine Kohut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라고.

자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그리고 각자의 유한성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겸손이 생긴다. 그리고 그 겸손은 십시일반으로 달려들어 주변 환경을 함께 변화시키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매사 긍정적이지 못한 나를 탓하기보다 현실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혜안(慧眼)을 함께 키우는 것은 어떨까.

김현철

김현철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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