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작년 한 해는 민주당 의원들이 의사들을 법으로 다스려 보겠다고 너도 나도 유행처럼 입법을 시도한 한해였다.

이들이 제안한 법안을 들여다 볼 때 입법과정이 정의롭지 못하고 내용도 충실하지 못한 법안들이다.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섬세한 연구 없이 만들어진 졸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일부 법안이 통과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아마도 성범죄가 어느 해보다도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분위기를 타고 통과가 가능했으리라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이런 현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의사들이 자율정화에 힘쓰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싶다.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일부 극소수의 진료실내 성범죄 의사와 비윤리적인 의사들을 강력하게 징계하고 격리시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못하는 것인가? 세상 모든 일이 여러가지 원인들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만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썩은 부위를 도려낼 칼(권한)과 결연한 자정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의사협회 정관과 윤리위원회 규정으로는 썩은 동료들을 조사하고 징계할 행정력(공권력)이 없다. 윤리위원회 위원들이 의사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 윤리위원들의 임기도 집행부와 같아 독립적이지 못 한 구조이다. 구성원들도 처벌절차나 의사 직업윤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결연한 자정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부로부터 ‘왜 비리 동료들을 징계하지 않느냐’고 공격을 받을 때마다 자율 징계할 칼(권한)도 없으면서 “강력 징계하겠다”는 말만 해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번 공수표만 날리고 있었다. 이런 사정도 모르는 외부에선 의사협회가 제 식구 감싸기만 한다고 비난하며 모든 것을 법으로 다스리려 하고 있다.

이것이 의사협회의 부끄러운 현 주소다. 전문가의 생명과 같은 자율정화에 대한 무개념 내지는 무관심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다. 2011년 개정된 의료법에 각 중앙단체의 징계요청이 있을 때 1년 이하의 면허정지를 할 수 있게 해놓았지만, 이 정도의 법으로는 자율징계를 이루어 갈 수 없다. 생색만 낼 뿐이지 실효성이 없는 법 개정이다. 의사단체가 스스로 자율정화하려는 의지가 더 강력했어야 했다. 조금 더 일찍 준비하고 깨어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타율에 의해 의사면허 관리를 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모두 통렬한 반성과 개혁이 요구된다. 실제로 자율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첫째, 징계위원구성에 있어서 외부 인사를 포함하여 징계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공정한 징계는 질서를 유지시키고 경각심을 주지만, 잘못된 징계는 분노를 일으키고 단체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때문이다. 둘째, 징계위원의 독립성이다. 현재 정관상 윤리위원들은 집행부 임기와 같은 임기를 가지고 있고, 실제적으로 협회장의 추천으로 임명되는 수준이다. 임기를 집행부의 임기와 달리하고 윤리위원은 다른 보직 일체를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조사와 징계가 진행되도록 정부에서 행정력(수사권, 공권력)을 위임하고 보장해 주어야 한다. 넷째, 명확한 징계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의료법이나 대한의사협회 정관과 중앙윤리위원회 규정에 의해 정해진 징계기준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또한 규모 있는 징계를 위해 벌칙기준(징계의 경중)이 어느정도 정해져야 할 것이다.
들쭉날쭉한 징계는 권위를 가지지 못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자율징계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의협 새 집행부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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