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에 따른 갑작스런 영업환경 변화에 경황이 없는 제약업계, 그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상업적 역량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의료서비스업계, 바이오시밀러 및 의료기기 등을 통해 헬스케어산업 투자를 본격화 하기 시작한 대기업들, 빠른 의료비 증가 추세를 낮추고 의료복지 수준을 제고하려는 정부. 이들 모두는 우리나라 헬스케어산업의 주요 구성원들이다. 개별 구성원 입장에서는 타당한 주장들이 다른 구성원의 타당함과 부딪치며 파열음이 거세지고 있다. 약가인하를 둘러싼 정부와 제약업계의 마찰은 헬스케어산업 전반의 큰 변화를 알리는 시작일 따름이다.

보편적 의료복지의 증진이든 미래신성장 융합산업으로서든 이제 헬스케어산업은 그 구성원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전략적 고민을 해야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미래의 헬스케어산업은 복지와 성장의 두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며 국가 의료비지출을 줄이고자 골몰하는 세계 각국의 정부들 그리고 매력적인 투자처가 동이나 버린 투자자본을 동시에 매료시켜야 한다. 어느 국가가 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전세계가 이를 모방하고자 경쟁을 벌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새 표준을 거머쥔 그 선도국은 엄청난 과실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헬스케어산업 구성원들이 그 성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고민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글로벌시장 진출전략이다. 시장진출전략을 짜자면 글로벌시장의 필요(unmet needs)가 무엇인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헬스케어 체제로 전환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환자 맞춤처방을 위한 약물정보학기반의 신약, 항체 바이오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 전환, 진단기기의 중요성 부각, 만성질환자의 효율적 처치를 위한 e-헬스/u-헬스, 병원운영의 효율성 배가를 위한 디지털병원 시스템 등이 그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신기술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기술들의 조합에 따른 글로벌 헬스케어산업에 대해 어느 시장이 가장 큰 흡입력을 보여줄 것인가? 필자는 그 지역이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중국의 전체 의료 시장은 2000조~30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장규모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의 현재와 10년 후의 간극을 채우게 될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최근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니계수가 0.5를 넘어서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전세계의 1/3에 달하는 4억2천만명의 흡연자와 5천만명에 육박하는 당뇨병환자 등 식생활의 서구화로 인한 중국의 만성질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의료체계 인프라는 그 질과 양 모두에서 현저히 부족하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와 삶의 질에 대한 중국인민의 요구가 증가일로에 있음을 감안할 때 중국은 향후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13억 거대 인구를 위한 의료체계의 구축에 있어 중국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서구사회에 일반화된 의료체계를 모방하기 보다는 신기술의 활용을 극대화한 미래지향적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많은 실험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 헬스케어체제에 대한 중국의 고민과 실험에 한국의 기업은 핵심 콘텐츠를 제공해 중국 헬스케어체계의 성장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인의 유전적 특징을 반영한 맞춤신약, 중국 암환자와 자가면역 질환자를 위한 국제수준의 바이오시밀러 생산 및 유통, 낙후된 농촌의 효율적 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한 u-헬스, 중국시장에 특화된 의료기기 등 이 모두 중국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관심을 가질 사안들이다.

중국의 성과는 한국의 지속가능한 의료체계 구축 노력에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산업적으로는 우리가 구축한 새로운 의료체계의 표준이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서 차용될 것이다. 중국 헬스케어산업에 대한 접근은 아시아 경제권의 헬스케어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전략적 시발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국제수준과 동떨어진 중국의 지적재산보호, 오락가락하는 헬스케어관련 정책 등의 이유로 중국에 대한 적극적 접근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세계 어느 시장에서 우리나라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쉽게 판매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게 된다.

최 종 훈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원

최종훈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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