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최근 서울시장의 아들의 MRI사진이 인테넷에 나돌았다. 병역기피를 위해 MRI사진을 바꿔치기했다며 세간이 떠들썩했다. 결국 공개 검증을 통해 본인의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나면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불법적인 환자의 의무기록 유출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 의사를 불신하게 되는 휴유증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의 의무기록과 자료 등은 진료나 법으로 정한 요건이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어느 의료기관에서 누구에 의해서 개인의 의료 기록이 타인에게 제공되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의료법상 ‘의료법 제21조(기록 열람 등) ①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개정 2009. 1.30.>’고 되어있으며 이를 어기게 되면 ‘의료법 제88조(벌칙) 제21조제1항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의료 윤리문제 중 하나는 진료 중에 습득한 환자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해야 한하는 점이다. 비밀유지의 의무는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의료 윤리의 초석이었으며 세계의사회의 국제의료윤리강령에도 “의사는 알게 된 비밀을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라도 절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 고 밝히고 있다. 환자의 비밀유지가 중요시 되는 것은 환자의 자율성,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신뢰라는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환자의 자율성은 비밀유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인 정보란 본인의 것이고 본인의 동의 없이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비밀유지는 인간 존중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인간을 존중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서로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이다. 환자는 자신의 사생활과 정보가 보호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정확한 진단을 어렵게 할뿐 아니라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치권 권력층에 있는 분들에게는 이런 접근이 너무나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 대해서 정치권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이 사건을 지켜본 어느 의료계 원로교수는 환자에 관한 정보나 개인정보는 마누라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분은 간혹 아는 분의 부탁으로 환자를 진료한 후 진료를 부탁한 환자에 대해 물어오는 경우에도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신단다. 환자의 자율성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의사로서 환자의 정보를 지켜주어야 할 의무는 24시간 내내 시간과 장소, 만나는 사람에 관계없이 유지되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동안 권력형 병역비리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국민들이나 의사 모두 환자의 비밀을 보장해주는 일의 심각성에 대해 윤리적 민감도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합동 조사팀을 만들어 어느 곳에서 누구에 의해 개인의 MRI사진이 유출되게 되었는지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의료법에 정한 가장 강력한 처벌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환자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한 의사들의 경각심을 일으키고 재발방지를 위해 의사보수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의사협회는 두리뭉실하게 만들어 놓은 의사윤리지침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회원들에게 교육 자료로 제공할 책임이 있다. 실은 이번 같은 환자의 정보누출사건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적해야할 단체가 바로 의사협회다. 이렇게 중대한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협회의 행보에 실망이다. 새 의협 집행부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적절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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